그가 건네준 동심, 아이에겐 '희망' 어른에겐 '추억'
▲ 윤수천 아동문학가가 수원문학인의집 앞에서 동화작가로 살아온 삶을 회고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매일 버스여행하면서 영감 얻어
어렸을 때 '전국 장원'된 실력으로
대표작은 초등 교과서에도 실려
수원도서관서 고령자 글쓰기 수업중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에도, 줄기차게 비가 내리는 여름 장마철에도 매일 아침 여행을 떠나는 노인이 있다. 올해로 여든을 바라보는 그는 아침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글감을 얻는 이 여행을 대한민국 아동문학의 거목, 윤수천(77) 작가는 '창작 여행'이라 부른다. 윤 작가는 등단 45주년을 기념해 지난 11월 지나온 삶과 문학, 동화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윤수천 동화선집'(지식을만드는지식作)을 내놨다. 문학을 친구이자 연인이자 스승이라고 표현하는 그를 지난 2일 만났다.

#45년, 동심을 쓰다

"새벽 3~4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죠. 날이 밝으면 뭔가 신나는 일이 있을 거 같아요. 단순히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버스를 타고 '창작 여행'을 하며 얻은 영감들이 창작의 밑거름이 돼 주고 있습니다."

팔순을 목전에 두고도 '창작 여행'을 이어가고 있는 윤수천 아동문학가는 올해 등단 45주년을 기념하며 동화 모음집, '윤수천 동화선집'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지난 45년간 윤 작가가 창작한 단편동화 16편이 실렸다. '도둑과 달님', '행복한 지게', '봉출이가 만난 거북선', '용수 어머니와 전봇대' 등 그가 평소 아껴오던 작품들이 모아졌다. 여기에 윤 작가의 일대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진과 연보가 들어갔다. 2013년 발간된 '윤수천 동화선집'에 사진과 연보가 추가된 형태로 윤 작가의 45년 발자취가 담겼다.

"가을이 찾아오면 쓸쓸한 생각이 듭니다. 문득 무슨 일이든 꾸며봐야겠다는 생각에 돌아보니 어느덧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더라고요. 모든 청춘을 동화를 만드는 일에 온전히 쏟아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사랑'과 '희망'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그가 그린 사랑과 희망은 결코 쉬이 얻어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하얀 도화지와도 같죠. 작은 것 하나도 곧바로 흡수되는 것이 아이들이죠. 그렇기에 동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쓴 동화에서 희망은 절망과 곤경, 역경을 극복한 뒤에 얻어지는 것들이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것. 그것이 동화가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내 친구

1942년 충북 영동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외아들로 귀하게 자란 윤 작가는 평소 공상하는 일을 즐겼다.
집 밖 외출이 드물었던 때, 그의 공상들은 글을 쓰는 것으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글쓰기는 곧 그의 놀이이자 친구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부터는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시절 '전국 고교생 한글시 백일장'에 출전해 장원을 차지하면서 윤 작가는 문학인의 꿈을 꿨다. 경기도 안성으로 올라와 체신국(우정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국방부 정훈국을 거쳐 국방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으로 지냈다.
여러 직장을 거치면서도 그에 손엔 언제나 펜이 쥐어져 있었다.

"항상 글을 손에서 떼지 않았습니다. 글쓰기는 저에게 삶의 낙이었죠. 한번은 아내가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더라고요. 직장생활의 불만을 한 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거든요. 퇴근 후 직장에서 느낀 응어리나 스트레스를 저는 글을 쓰는 것으로 해소해 왔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었지요."

나이가 들어가며 그의 글은 진가를 발휘했다. 1974년 되던 해 그가 쓴 '산마을 아이'가 소년중앙문학상에 선정됐고, 197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동시 '항아리'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는 현재까지 90여편의 창작동화를 써내며 아동문학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특히 그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 '꺼벙이 억수'나 '할아버지와 보청기' 등 다수의 작품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동문학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독자들과 행복한 글쓰기

작가로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이고 있는 윤 작가는 활발하게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있다. 벌써 15년째 수원중앙도서관에 출강하고 있는 그는 '행복한 글쓰기' 수업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을 이어오고 있다.

"50세 이후 고령자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열고 있습니다. 어른이 돼서도 놀잇감은 필요한 법이죠. 혼자 할 수도 있고 돈이 들지 않고, 나이 들어서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잇감으로 글쓰기만 한 것이 없습니다."

윤 작가는 동화를 읽을 때 세 번 읽으라고 조언한다. 어린 시절에 읽는 동화, 아이의 부모가 돼서 읽는 동화, 노인이 돼서 읽는 동화 등 읽는 시점에 따라 같은 동화가 다른 동화로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동화에는 아이 어른 구분이 없죠. 아이였을 때 읽었던 동화가 성인이 되면 또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동화를 창작할 때 어른이 읽어도 유치하지 않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동화가 다른 장르의 문학보다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죠."

아동문학가인 윤 작가의 작품은 어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감명을 준다. 그가 쓴 동화는 어른들에게 지난 날을 반추해보는 기회와 시간을 선물한다.

"온라인 서점 리뷰에서 한 독자의 서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그만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동화는 아이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에게도 다시금 지금의 자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동화가 가진 힘이지요."

#윤수천 아동문학가는

1942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안성에서 학창시절(초·중·고)을 보냈다. 안성농고 3학년 시절,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주최 전국고교생 한글시 백일장에서 시 '하늘'로 장원을 했으며 국학대학(고려대와 통합) 국문과를 문예 특기 장학생으로 2년을 다녔다. 1974년 '산마을 아이'로 소년중앙문학상 동화 당선, 197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항아리'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데뷔 이래 현재까지 동화집 90여 권, 동시집 2권, 시집 3권을 출간했다.

이 가운데 동화 '행복한 지게', '별에서 온 은실이', '쫑쫑이와 넓죽이', '꺼벙이 억수', '누나의 생일'과 동시 '연을 올리며' 등 다수의 작품이 초·중등 교과서에 수록됐다. 현재는 초등학교 4학년1학기 국어활동교과서에 동화 '할아버지와 보청기'가 수록돼 있다.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경기도문화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윤 작가는 작사 작업에도 참여했다. '바람 부는 날의 풀', '섬' 등의 가곡을 비롯 '조국이 있다', '여긴 내 자리', '통일 두 글자', '여기에 섰다' 등 군가 작업도 했다. 또, 88서울올림픽기념 경기도 전야제 축제 행사 '한민족이여 영원하여라' 대본 집필과 경기도립무용단 정기공연 작품 '일어서는 빛'을 창작하기도 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