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⑫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 (3)<의산문답>, 우주의 신비를 알고 싶다
[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⑫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 (3)<의산문답>, 우주의 신비를 알고 싶다
  • 인천일보
  • 승인 2020.12.14 16:36
  • 수정 2020.12.14 19:17
  • 2020.12.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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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교육·인재 적재적소 활용 중요성 짚다
▲ 홍득구(洪得龜, 1653~1724)가 그린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어부와 초부(樵夫, 나무꾼)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여기서 어부와 초부는 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은자(隱者)를 은유한다. <의산문답>에서 실옹과 허자의 상황 설정도 이와 유사하다.

이제 <의산문답>으로 들어간다. <의산문답>은 <담헌서> 내집, 권4 '보유(補遺)'에 들어 있다. '보유'는 <임하경륜(林下經綸)>, '논향교(論鄕校)', '보령소년사(保寧少年事)', '봉래금사적(蓬萊琴事蹟)', '제배첨정훈가사(題裴僉正訓家辭)', <의산문답(毉山問答)> 등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선생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주요한 글이 <임하경륜>과 <의산문답>이다.

<임하경륜>은 선생이 생각하는 경국제민(經國濟民, 나라를 맡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 포부와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말한 하나의 건국설계도요, 정책론이다. 이 글 역시 실학에서 나왔다. 선생은 이 글에서 “옛말(語古)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지금의 일에 통하기는 어려우며, 헛말(空言)이 귀한 것이 아니라 실용에 알맞게 하는 것이 귀하다(語古非難 而通於今之爲難 空言非貴 而適於用之爲貴).”고 하였다.

적은 분량이지만 이 글은 전국 행정조직에서부터 통치기구·관제(官制)·전제(田制)·교제(校制)·교육·고선(考選)·군사·용병과 국가 통치원리까지를 언급하고 있다. '전국을 9도로 나누고 도(道)에 도백(道伯) 1인을 두며, 도를 9군(九郡)으로 나누고 군(郡)에 군수(郡守) 1인을 두며, 군은 9현(縣)으로 나누고 현에 현감(縣監) 1인을 두며, 현을 9사(司)로 나누고 사에 사장(司長) 1인을 두며, 사를 9면(面)으로 나누고 면에 면임(面任) 1인을 둔다'는 행정조직 안(案)은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탁견이다. 특히 각 면(面)에 학교를 하나씩 두고, 학교에 각 교관(敎官)을 둬서 8세 이상 면 자제들은 모두 교육 시키자 주창했는데 새겨들을 만하다. 선생이 말한 이유는 이렇다.

“무릇 인품은 높낮음이 있고 인재는 장단점이 있다. 그 높고 낮음에 따라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면 천하에 전혀 버려야 할 인재란 없다. 그 뜻이 높고 재주가 많은 자는 위에 올려서 조정에 쓰고, 그 자질이 둔하고 용렬한 자는 아래로 돌려 지방에서 쓰고, 그 생각이 교묘하고 손재주가 민첩한 자는 공장이로 돌려쓰고, 그 이문을 잘 통하고 재물을 좋아하는 자는 장사로 돌려쓰고, 그 모사를 잘하고 용기 있는 자는 무인으로 돌려쓰고, 눈먼 자는 점쟁이로 일을 시키고, 거세된 자는 환관으로 쓰고, 벙어리·절름발이·귀머거리에 이르기까지 다 일하는 바 있지 않음이 없다. 놀고먹으면서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 자는 군장(君長)이 벌주고 향당(鄕黨, 시골마을)에서 버려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깜냥(내가 할 수 있는 최고치의 능력 정도의 의미)'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됫박만한 깜냥으로 말들이 세상을 되질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 “나에게 주어진 깜냥대로 살아가면 된다.”를 주문처럼 외워댄다.

각설하고, <의산문답>은 가상 인물인 허자(虛子)와 실옹(實翁) 두 사람을 설정해놓고 대화하는 형식이다. 이렇듯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기법은 당시에 꽤 유행하였다.(이 시기 화단(_壇)에서도 어부와 초부가 대화 나누는 '어초문답도'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의산'은 의무려산으로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크게 치료하는 산'이란 뜻이다. 중국 동북 요령성 북진현에 있는데 '의무려(醫無閭)' 혹은 '어미려(於微閭)', 줄여서 '의산'이나 '여산'이라고도 부른다. 우리 선조들은 동이족과 중국족이 만나는 신령한 산으로 여겼다. 선생의 <의산문답>은 이 신령한 산에서 나눈 허자와 실옹의 대화다. 그런데 이 <의산문답>은 선생과 연암 박지원을 교우관계로 볼 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것은 연암의 기록에 <의산문답>이 전연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시 선생과 지근거리에 있었던 청장관 이덕무의 방대한 저술인 <청장관전서>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생이 벗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아닐까?'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에 대해 눈 밝고 귀 밝은 독자들의 고견을 기대해본다.

이 문제는 그렇게 놓아두고, 등장인물은 허자와 실옹 두 사람이지만 다루는 내용은 동서고금을 오르내리며, 담헌의 학문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읽기에 따라 경직된 조선사회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해보고자 하는 선생의 속내도 읽힌다. 그래서인지 학자들에 따라서는 토론소설로 보기도 한다.

허자는 숨어 살며 독서한 지 30년이 된 학자다. 그는 자신이 천지조화와 은미함을 궁구하고 오행의 근원과 삼교(三敎)의 진리를 달통하였고 사람의 도리를 날실과 경실로 삼아 이지가지 많은 세상 물리를 깨달아 통했기에 사건의 원인과 자세한 전말을 훤히 꿰뚫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듣는 사람마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 현자를 찾아다니다가 실옹을 만난다.

허자는 당시 세속적인 번잡하고 불필요한 의식이나 법규에 매달리고 헛된 것을 꾸미고 숭상하는 자다.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이요, 성리학의 공리공담만을 학문으로 여기는 도학자요, 전통사고에 매몰된 부유(腐儒, 썩은 선비)다. 실옹은 의무려산에 숨어 사는 자로 허자에게 깨달음을 들려준다. 선생은 이 실옹을 '거인'(巨人)이라 하였다. 실옹은 선생의 이상 속에 있는 실학적인 인물이다.

이제 천문·지리와 천체운행·지구자전설 등 우주의 신비와 각종 거대담론을 종횡무진 휘젓는 <의산문답> 속으로 들어가 보자.

/휴헌(休軒) 간호윤(간호윤 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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