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바람과 시간이 만든 푸른 섬, 대청도
[다녀왔습니다] 바람과 시간이 만든 푸른 섬, 대청도
  • 심우창
  • 승인 2021.01.13 16:06
  • 수정 2021.01.13 16:06
  • 2021.01.14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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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오래전부터 사람들한테 어떤 곳일까. 어떤 이에게는 생활터전으로서 고향이며 어떤 이에게는 일상에서 벗어나 심신을 재충전하는 곳이거나 전설로 구전되던 신비의 장소이기도 하다.

서구의회 의정 연구단체는 백령도를 떠나 대청도를 향하면서 남북분단의 현실과 최북단 섬의 엄중함을 선상위에서 느끼는 것도 잠시, 선진포항에 도착하면서 아름다운 절경에 여느 다를 바 없는 여행자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파른 산지가 눈에 띌 정도로 지형 대부분이 산이었다. 섬의 중심 부분엔 대청도의 좁은 면적치고는 꽤 높은 삼각산이 자리잡고 있다. 백령도의 최고봉보다 두배 이상 높은 것으로 해빙기 이전엔 이곳이 거대 산맥의 산봉우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섬의 이름에서 보듯이 소나무가 많아 푸른 섬, 청도(靑島)라 불린다. 이 소나무 숲길은 트레킹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이 자연을 만끽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가까이서 보니 소나무마다 번호표가 달려 있었다. 역사적으로 큰 산불이 있었다고 하여 소나무 관리에 철저히 임하는 것이라 한다.

소나무는 모래같은 삭막한 지형의 확대를 막거나 보수하는 특성이 있다. 과거 전 국토의 벌거숭이산들이 울창한 산림으로 탈바꿈된 것도 식재사업에서 큰 역할을 한 소나무 덕이었다. 그런데 산비탈의 중턱에 이르니 설마 소나무섬에 있을까하는 특이한 지형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래산? 아니 중동의 사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낙타 조형물마저 자연스럽다. 파도가 가져온 옥죽동 해변 백사장의 모래가 유구한 세월동안 바람에 흩날리며 쌓여진 것으로 실로 자연이 빚은 장엄한 광경이었다.

대청도의 처녀 총각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래 서말을 먹어야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넓었다니 말문이 막혔다.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는 말처럼 바람에 끊임없이 모래가 날리며 지형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군부대와 참호를 지나며 서풍받이에 이르자 오랜 세월 북서풍으로 만들어진 조각바위가 햇빛을 반사하며 우리를 반겼다. 이곳은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토곤 테무르가 황태자 시절 유배하면서 사색했던 곳이라 한다. 백미터가 넘는 이 언덕에서 거닐며 어떤 사념에 잠겼을까. 그 밖에도 10억년전 지각운동으로 만들어진 기암괴석이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같은 대유니 농여해변 등 자연유산급 절경이 사람 손때를 타지 않고 자리잡고 있다.

섬을 둘러싸고 많은 해변이 있는데 특히 오랜 세월 서풍이 만들어 낸 모래울 해변은 원래 이름이 사탄해변이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도 사탄동이다. 종교인들이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다.

풍어제나 당제같은 토속신앙은 기독교의 이른 유입으로 백령도와 같이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셨다는 장군당, 서낭당, 부군당 등 여러 곳에서 소를 잡아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는데 점점 섬마을 전통축제가 사라진다니 아쉽기만 하다.

대청도에는 꽃게가 유명한 만큼 꽃게 우량종자 생산시설이 들어설 계획이다. 어민들의 어려움이 해소되길 바라며 서구의회 연구단체 '우리민족 뿌리문화 바로알기'의 서해5도 문화유산탐방의 막을 내렸다. 대청도의 자연유산이나 토속문화유산처럼, 자연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고 인간의 족적은 끊임없이 새겨지며 사라진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사가 아닌가 한다. 그 시간 속에 후세에 남기고픈 것들을 잘 포장하고 보존하겠다는 우리 연구단체의 사명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심우창 인천 서구의원 colum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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