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13. 취석실(醉石室) 우하영(禹夏永, 1741-1812)-(2)<천일록> 내 일념은 동포를 모두 구제하는 데 있다
[아! 조선, 실학을 독하다] 13. 취석실(醉石室) 우하영(禹夏永, 1741-1812)-(2)<천일록> 내 일념은 동포를 모두 구제하는 데 있다
  • 간호윤
  • 승인 2021.02.22 20:10
  • 수정 2021.02.22 20:10
  • 2021.02.23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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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가난은 '체념·절망 않는 궁핍' 뿐
▲ 취석실 우하영 묘역(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1호.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숙곡리 산 78-1).

“언어는 한 개의 사회적 행동이다.” 일제하 모더니스트 김기림(金起林)이 '시와 언어'에서 한 말이지만 언어가 어찌 시만 한정하겠는가. 우하영 선생의 글은 조선말엽을 치닫고 있던 저 시절, 나름 사회적 행동이었다. 그것도 임금에게 쓴, 시무책(時務策)이다. '시무'란 그 시대에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양면이 있는 법, 이쪽에서는 부정적인 시무지만 저쪽에서는 이득이 곱으로 느는 긍정적인 시무일 수 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19라는 긴 터널을 통과한다. 백성들은 하루 살아내는 것조차 힘들다. 개인은 전염이라도 될까 문밖출입도 삼가고 국가는 오죽하면 설 명절조차 부모형제 간 만남도 숫자화하였다. 하지만 방송국은 연일 시청률이 올라 광고로 인한 호황이요, 각종 언택트 관련 제품은 호황에 호황을 거듭한다. 정치인들은 물리지도 않는지 이 '코로나'를 콧궁기는 발씸발씸, 입궁기는 오물오물 씹어댄다. 오죽하면 혼술족에 소주판매가 고공행진 중이란다.

각설(却說)하고, 저 시절 선생은 <취석실주인옹자서>(醉石室主人翁自敍, '술 취해 돌 위에 누운 늙은이'란 호로 이름한 방주인인 내가 나를 쓰다)에 자신의 성품을 이렇게 써놓았다.

 

“사람이 궁박하고 현달한 것은 참으로 천명이다. 한마디 말이나 하나의 일로 백성과 나라에 참으로 보탬이 될 수 있고 후대 정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결코 헛되이 보내는 삶은 아니다. … 나는 몸이 자그마하고 용모도 볼품없어 스스로 현달할 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벼슬과 명예, 이익에 뜻이 없었다. … 자손들에게 늘 '너희들이 기르는 금수를 천시하지 마라'고 타일렀다. 개와 말은 주인이 기른 은혜를 저버리지 않아 자신을 죽여 보답하기도 하고 팔려가 돈으로 갚기도 한다. 그런데 좋지 않은 사람들은 나라로부터 두터운 은혜를 입고 비단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더라도 보답하지 않고 공을 등지고 사를 꾀하니 이럴 바에는 사람을 기르느니 금수를 기르는 편이 낫다.…취하지 않고도 취하였는데 취한다는 것은 정신이 맑지 않다는 게니 그래서 옹(翁, 우하영 자신)은 성품이 어리석은 것인가? 돌이 아닌 돌인데 돌은 지각이 없으니 그래 옹은 성품이 완고한 것인가? 어리석고 완고하면 세상과 어긋나니 이 취석실에서는 과연 편안할 수 있을까?”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글이다. 선생은 극한의 가난으로 삶이 궁핍할망정 사람다운 사람이고자 하였다. 선생에게 궁핍은 체념하지 않는 궁핍이요, 절망하지 않는 궁핍이었다. 선생은 김육(金堉, 1580 ~1658)의 대동법(김육은 인조 말년과 효종 초에 대동법 시행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대동법은 지주들에게 토지세를 물리고, 땅을 가지지 않은 소작농들에게는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는 제도였다. 따라서 기득권 세력은 극심하게 반발했고 권문세가들은 악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을 지지하였고 조선 실학의 태두격인 성호 이익과 동일하게 중농주의자였다. 선생과 이익의 연은 깊다. 선생의 7대조인 우성전(禹性傳, 1542~1593)의 비문을 지은 분이 바로 이익이었다.

선생의 학문은 실학이었다. 선생은 <취석실주인옹자서>에서 “문헌을 널리 연구하고 고금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참작하여 정밀하게 생각을 다하고 어느 게 이롭고 어느 게 해로우며 어느 게 편리하고 어느 게 그렇지 않은지를 생각하느라 먹고 자는 것도 거의 잊었다”고 하였다.

선생은 역사에도 관심이 깊었다. 단군과 기자를 한민족의 기원으로 보고 수천 리조차 안 되는 영토의 산천·풍토·민요·풍속 등에 무지한 우리의 현실을 개탄하였다.

선생은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고 일체의 법과 자연은 자연스레 변한다고 여겼다. 상생론적 우주관이다. 이른바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 노마드(nomad, 유목)적 사고·실학적 사고다. 선생은 나라와 시대에 따라 통치 방법도 다르다고 보았기에 현재의 폐단을 고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천하 만물은 세월이 오래되면 으레 해지고 망가지게 됩니다. 옷이 해지면 기워서 완전해지고 집이 망가지면 수리하여 새로워집니다. 아무리 좋은 법과 아름다운 제도라도 시행한 지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니 폐단이 생겼을 때 바로잡으면 소생할 수 있습니다. … 아침 해가 환히 빛나지만, 석양이 시들하게 식는 것은 하루 사이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 빛이 점차 희미해지기 때문이고 봄에는 화창하다가도 겨울에 추워지는 것은 1년 중에도 봄부터 겨울까지 세율(歲律, 세월의 자리)이 변하기 때문이니 하물며 사람 일처럼 느슨해지고 폐단이 쉬운 거야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이 있었기에 선생 글은 조선의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였다. 이러니 선생 글이 어찌 사회적 행동이 아니겠는가.

다음 회부터는 구체적으로 <천일록>의 내용을 살피겠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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