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바다를 잇다' 수변공간 사용설명서

개항·항만 거치면서 해양도시 색깔 퇴색
스페인 빌바오 등 국내외 벤치마킹 통해
역사와 문화 바탕으로 브랜드 구축 필요
▲ 보존된 옛 부두 안벽(미국 보스턴).
▲ 보존된 옛 부두 안벽(미국 보스턴).

인천은 해양도시였다. 개항기 인천은 신문물(新文物)이 들어오던 해상관문이었다. 바다는 시민들을 향해 열려있었고, 시민들은 가까운 바다로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포구는 근대 항만으로 변했고, 매립지와 바닷가 언덕에는 시가지가 조성됐다.

해안에는 군 경계철책이 설치됐다. 지난해 기준 경계철책 길이가 142.05㎞이다. 해안선 전체의 12.2%에 해당한다. 무역항과 국제공항의 보안구역, 해안도로변 안전펜스도 바다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다. 특히, 중구는 해안선 대부분이 내항과 남항, 공항, 해안도로로 막혔다. 서구와 강화군은 경계철책이 장벽이며, 서구는 여기에 북항이 더해졌다. 1970년 이후 20여 년간 전성기를 구가하던 송도유원지도 쇠퇴일로를 걷다가 결국 폐장했다. 우리 주변에 인천을 해양도시라 할 만한 것들은 무엇이며, 또 얼마나 남아있는지?

이제 인천은 해양도시가 아니다. 인천은 항만도시다. 원도심 해안의 상당 부분을 점하는 항만구역은 인천시 행정구역임에도 불구하고 계획과 이용에 대한 권한을 해양수산부가 행사한다.

인천을 해양친수도시로 되살려야 한다. 올해 초 인천시는 '인천 해양친수도시 조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해양친수도시, 인천'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기본계획에서는 '시민과 바다를 잇다'를 미래가치로 설정했다. 인천을 해양친수도시로 되살리기 위한 수변공간 사용설명서를 작성해 본다.

▲ 네르비온 강가의 수변산책로(스페인 빌바오).
▲ 네르비온 강가의 수변산책로(스페인 빌바오).

▲사용설명서 1. 수변과 배후도심을 연결하자

스페인 빌바오는 철광과 조선산업으로 융성했던 도시지만 경제 불황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 도시를 살린 것은 친수도시로의 공간구조 재편전략이었다. 계획 수단은 보행에 의한 네트워킹 기법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네르비온 강 주변의 공공·문화시설들을 수변산책로로 이어주고, 원도심의 상권과 광장을 수변에 연결했다. 도심녹화와 대중교통을 개선했다.

빌바오 사례는 내항1·8부두 재개발이나 월미도 워터프런트, 북성포구 매립지 등 원도심 내 사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만으로 빌바오가 되살아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해양친수도시, 인천'을 원한다면 친수공간 조성 이외에 원도심과의 연계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지역과 역할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수변과 원도심 간의 보행과 기능적 교류가 활성화되고 파급효과도 키울 수 있다. 기본계획에는 39개 신규 사업에 2030년까지 3089억 원이 반영됐다. 선투자할 곳에 대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 원도심에서의 접근이 용이한 곳, 해변과 원도심 간 수변산책로 이용이 활성화될 수 있는 사업을 먼저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설명서 2. 섬 마을 이웃사촌 만들기

옹진군 내 유인도서는 23개다. 인구는 소폭 늘어나는데도 아이들과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 추세다. 생산연령인구 감소 폭이 우려스럽다. 관광객은 2019년에 384만 명으로 2년 전보다 15.1% 감소했다. 지금 내일 일자리를 준비하지 않으면 섬들은 머지않아 우리 기억에서 잊혀질 수 있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18리 폐광촌도 2년 전까지는 쇠락한 동네였다. 마을 자체가 하나의 호텔이라는 개념으로 동네를 정비했다. '위드 코로나'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기대되는 사례다.

인천시는 기본계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인천 섬 한 달 살기'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려면 기반시설과 마을환경, 일상 속의 휴식공간을 정비해야 한다. 또 한 달 거주자를 환대하는 마을 분위기와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입지적으로는 육지와 가까운 섬이 유리하다. 한 달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서구 세어도는 '어촌뉴딜300' 사업으로 선착장 조성과 마을환경 개선, 주민교육이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의 아쉬운 점은 수혜 대상이 섬 주민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직면할 노령화와 인구 유출, 빈 집 발생 등을 다 고려해야 한다. 그 해법으로 주민들이 원한다면 사업의 수혜 범위를 도시민까지 확대해야 한다. 섬 마을 이웃사촌이 늘어날수록 섬의 정주 안정성은 더욱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경관형성사업', '연안정비사업'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 섬에서도 시행할 수 있다. 섬 주민의 노력과 시의 적극적 지원이 전제 조건이다.

 

▲사용설명서 3. 개별 자원을 하나로 묶는 통합 브랜드를 만들자

친수시설의 개별 이용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관광단지와 같은 효과는 인지도와 마케팅 효과, 시설의 공간적 밀집도, 투자규모 등에서 기인한다.평창군은 대부분 해발 700m 이상의 산악지역이며, 지역개발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평창은 고산지역이 부각되도록 통합 브랜드로 'HAPPY 700'을 선정했다. 활성화 전략은 숙박거점과 연계자원 간 네트워킹이었다.

인천 석모도는 원도심에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연육 도서다. 최근 비대면 여가활동이 확대되면서 차박 장소로 어류정항과 민머루 해수욕장이 뜨고 있다. 그 주변 2㎞ 범위 내 매음리 선착장, 골프장, 온천, 저수지 낚시터 등이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지역의 질 좋은 갯벌과 온천수이며, 농업진흥지역 내 저수지와 농산물도 자원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합 브랜드로 인지도를 높이면 친수시설이 멀리 있다는 인식도 개선할 수 있다. 구역의 범위는 시설들을 도보나 자전거, 킥보드 등으로 연결할 수 있는 거리면 무난할 것 같다. 기반시설 확충은 공공부문이 담당해야 한다. 시설투자는 통합 브랜드화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사용설명서 4. 장소성 부각의 소재로 산업유산을 활용하자

과거의 도심재편 수단은 기능주의에 기초한 전면재개발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어디를 가나 비슷한 모습의 무표정한 도시를 보게 됐다. 미국 보스턴의 재개발도 시작은 그랬다. 보스턴은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의 중심 항만이자, 임해산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20세기 중반, 도심 거주자들이 교외로 떠났고 도시는 황폐해졌다. 웨스트 엔드(West End) 재개발은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 역사의 흔적과 문화를 남기는 도시재생이었다. 노스 엔드(North End) 스토리다. 필라델피아의 체리 스트리트 피어(Cherry Street Pier)는 옛 창고의 외관을 유지한 채, 내부를 문화·여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좋은 사례다.

인천의 수변공간에서는 개발법에 의한 사업, 도시계획시설사업, 건축법에 의한 필지단위 건축행위 등을 할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사업방식이 다양하다는 뜻이다. 또, 입지마다 사업여건이 달라 도시재생사업만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선택하던 재생기법을 적용할 수는 있다. 재생으로 장소성을 부각시켜 지역 정체성(identity)을 높일 수 있다. 집객과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 개발의 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하다. 인천항 주변에 옛 부두와 안벽, 크레인, 산업철도, 여객선터미널, 창고, 사이로, 공장 등 산업유산이 많이 남아있다. 낡은 현재 모습 뒤에 숨겨진 미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다만, 보전에 치우친 저밀도 재개발만을 요구하면 지역경쟁력을 높일 기회를 잃게 된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된다. 도심의 대규모 수변공간이면 더욱 그렇다. 도심 경쟁력은 집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개발과 보전의 지혜로운 조화가 중요한 이유다.

민머루 해수욕장.
민머루 해수욕장.

인천을 해양친수도시로 되살리기 위해서는 첫째, 시민들의 참여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기본계획 수립 시 워크숍, 시민포럼, 시민대학, 주민설명회 등 일련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했다. 실천 과정에서도 시민의견을 지속적으로 듣고, 이를 반영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둘째, 예산은 한정돼 있다. '선도사업과 후속사업', '선택과 집중'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부족한 시 예산을 고려하여 국가지원이 가능한 예산 항목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셋째, 기본계획 내용을 법정 계획에 담아야 한다. '인천 해양친수도시 조성 기본계획'은 비법정 계획이다. 계획의 실행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특히, 도시관리계획과의 연동체계가 중요하다.

이제 인천을 해양친수도시로 되살리기 위해 닫혔던 수변공간을 어떻게 개방하고, 재생하며,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갈 때다.

/탁영식 (주)건일 사장 (공학박사·도시계획기술사)

관련기사
[인천 미래 가꿈 프로젝트] 바다 이음, 변화의 시작 도시는 진화하는 생물과 같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생명력을 이어간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발전한다.최근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집중폭우,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한 도시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환경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바다를 품고 있는 선진 해양도시들은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시범사업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재난재해 대응을 위한 물 중심 도시계획(RESILIENCE WATER PLAN)을 만들고 있다. 노후 항만을 새로운 도시성장의 거점으로 재생시키고 있다.인천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