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9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정신과 거대담론이 실종된 선거'였다는 것이다. 거대 양당의 두 후보는 국가 어젠다나 주요 정책 대신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과 '심쿵' 공약으로 유권자를 공략했다.
'탈모 치료 국민건강보험 적용'과 '전기차 충전 요금 동결' 공약이 대표적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공약 시리즈인 '우리동네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생활밀착형', '마이크로 타기팅(micro targeting·정밀 타격형)' 공약이라는 이름과 명분이 붙었지만, 기자 출신 한 소설가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그런) 공약을 보고 무슨 철학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거기에 한국 사회에 대한 어떤 진단이 담겨 있나”며 “다음 세상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인간은 시시해진다. 우리는 그냥 다 같이 시시해졌다”고 한탄했다.
이제 대선은 끝났고, '2라운드'인 지방선거 정국이다. 각 지역에서 예비후보자의 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조금은 시시해도 될 것 같은 지방선거 예비후보자의 출마 선언과 공약은 오히려 너무 거창하고 화려하다.
인천의 한 기초의회 선거에 도전한 한 예비후보자는 공약으로 '재개발 규제 및 용적률 완화', 'e음 캐시백 15% 상향' '공공형 요양원 건립' 등을 내걸었다.
'지역 랜드마크타워'와 청년들을 위한 '반값 오피스텔 1만호' 건립을 공약으로 제시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자도 있었다.
공약만 놓고 보면 기초의회 선거인지 시장 선거인지 분간이 어렵다.
지난 3·9 대선은 여러모로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지난 7차례 동안 단 한 번도 역대급이었던 적이 없다. 지역 유권자들의 만성적 무관심 상태에 놓여있다. 너무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소하지도 않은 그러나 지역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크게 느껴지는 그런 출마 선언을 보고 싶다.
/유희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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