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일산 도시 계획따라
이융조 충북대팀 등 발굴조사
가래나무 속 볍씨 11톨 찾아
'5020년 전 재배볍씨'로 확인

농사 기원 여겼던 탄화미보다
무려 2000년 앞서 전세계 이슈
벼 '일본 유입설' 뒤엎는 계기
중요성 입증 박물관까지 지어

팔도 제일의 쌀이 되기까지…1000년 기록 파헤친다

인류가 가장 먼저 가꾼 곡물 쌀. 우리에게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의 삶은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오래전 농경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던 한반도 최고의 쌀은 단연 '경기미'였다. 예부터 경기 땅에서 나는 쌀로 지은 밥은 맛 좋기로 유명했다. 덕분에 경기미는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려질 만큼 팔도 제일의 쌀로 평가받았다.

실제 고문헌인 '이천부사 복승정'에는 미식가로 알려진 성종 임금이 세종릉에 성묘를 마치고 이천에 머물던 중 이천 쌀의 밥맛이 좋아 진상미로 올리게 됐다는 일화가 기록돼 있다.

특히 경기도 여주와 이천 지역은 전라도 전주, 김제 만경, 황해도 연산, 봉산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쌀 산지로 꼽히면서 현재까지도 이천 임금님쌀, 여주 대왕님쌀 등 경기미의 대표 브랜드 쌀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4차 산업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는 '쌀'은 주식이 아니다. 서구화된 식단 변화와 분식 장려 정책으로 우리의 농경 문화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여기에 값싼 수입산 쌀까지 들여오면서 영화를 누리던 '경기미'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에 인천일보는 경기도 천년 역사 속 도민들의 든든한 '밥심'이 돼온 경기미의 옛이야기를 기록하고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경기미 이야기 '천년밥상, 경기미 이야기-농쌀직썰'이 다시 한 번 쌀의 부활을 꿈꾸며 '경기미의 전성시대'로 안내한다.

 

제 1화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 고양 가와지볍씨

곡우(穀雨), 24절기 가운데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는 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 선조들은 곡우 무렵부터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다는 속담처럼 ‘천년밥상, 경기미이야기’의 힘찬 첫걸음은 ‘곡우’에서부터 출발한다. 농사로 한강 문명을 꽃피웠던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 ‘제1화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 고양 가와지볍씨’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위대한 발견

▲ 1991년 가와지볍씨 발굴에 참여한 충북대 조사대원들. 당시 연구환경이 굉장히 열악해 발굴도구라고는 삽자루 밖에 없었다.
▲ 1991년 가와지볍씨 발굴에 참여한 충북대 조사대원들. 당시 연구환경이 굉장히 열악해 발굴도구라고는 삽자루 밖에 없었다.

인류가 가장 먼저 재배하기 시작한 곡물, ‘쌀’은 여전히 우리의 주식이자 끼니를 잇는 중요한 먹거리다. 세계 인구 반 이상의 주식이기도 한 쌀은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경작됐고 특히 강수량이 높은 열대 지역이나 온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돼 오고 있다. 그렇다면 반만년 농경문화를 이어온 한반도 최초의 농사는 어디서, 언제부터 이뤄져 왔을까?

1991년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대화4리 가와지 마을) 일대로 무려 5020년 된 ‘볍씨’가 발견됐다. 볍씨는 한반도 최초 농사의 기원을 밝혀내는 단서이기도 했다.

당시 손보기 교수가 이끌던 일산 신도시 조사단과 이융조 교수가 주축이 된 충북대 조사팀, 공주 석장리 유적발굴 경험이 있었던 김기용 대원 등이 참여한 발굴단은 ‘일산 신도시 건립계획’에 따라 일산 내 4개의 지역으로 구획을 나누고 각각의 발굴 조사에 나섰다. 

1991년 5월부터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 1지구의 토탄층 조사를 맡아오던 충북대 조사팀은 가래나무 안에서 11개의 볍씨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출토지점에서 발견된 볍씨 11톨은 연대 확인을 위해 곧장 미국의 베타연구소로 보내졌고 연대측정결과 5020년 전 볍씨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발굴한 볍씨를 가와지볍씨로 명칭 했고 볍씨는 한반도 최초의 가장 오래된 재배 볍씨로 알려지게 됐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가와지볍씨 발굴에는 손보기 교수의 역할이 컸다. 모두가 반대했던 볍씨 발굴을 우직하게 추진해 온 장본인이다. 또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발굴에 임해준 우리 충북대 조사팀 학생들의 공로가 크다. 이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여전히 땅속에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농사의 기원, ‘소지경’으로 밝혀내다

지구에서 발견된 가와지볍씨(I형)5020년전/사진제공=한국선사문화연구원
▲ 지구에서 발견된 가와지볍씨(I형)5020년전/사진제공=한국선사문화연구원

가와지볍씨의 발굴 이전까지 1976년 여주 흔암리에서 발견된 탄화미가 농사의 기원으로 여겨졌다. 탄화미 출토 이후에도 김포 가현리와 하남 미사리, 충주, 단양 등 한강 유역을 따라 한반도 곳곳에서 볍씨가 발견되기도 했다. 대부분 야생벼 또는 순화벼로 추정되는 다른 지역의 볍씨들과 달리 고양에서 발견된 가와지볍씨는 재배벼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가와지볍씨가 재배벼라는 단서는 ‘소지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소지경은 벼의 줄기 부분과 낱알을 연결하는 꼭지를 나타내며 자연 탈립인지, 인위적인 채취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가와지볍씨의 소지경 단면을 들여다본 결과 인위적으로 떼어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생벼에서는 소지경의 부분이 자연적으로 탈립하게 되면서 매우 매끄러운 상태지만 재배벼의 경우 거친 단면의 특징을 보인다. 가와지볍씨가 재배벼라는 사실이 명확해 지면서 한반도 농사의 기원은 청동기가 아닌 2000년이나 앞선 신석기 시대부터 이뤄져 왔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전래‘벼’화

▲ 1994년 9월17일 마이니치 신문 1면에 '5000년 전 쌀 출토, 한반도 최고, 일본의 쌀 루트 파문' 보도된 가와지볍씨 발굴 기사.
▲ 1994년 9월17일 마이니치 신문 1면에 '5000년 전 쌀 출토, 한반도 최고, 일본의 쌀 루트 파문' 보도된 가와지볍씨 발굴 기사.

가와지볍씨의 발견은 벼의 전파 경로가 일본으로부터 유입됐다는 학설을 뒤엎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반도의 유입 경로는 열대 또는 아열대인 인도의 아삼, 미얀마 북부, 타이북부, 중국 남서부를 잇는 긴 지대로부터 전파됐다고 현재까지 알려졌다. 중국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라 양쯔강 중류에서 기원해 하류 방향으로 전파했다는 학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 청주 소로리 지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되면서 중국 남부 대륙에서 해안을 따라 북진하다 금강을 거쳐 한반도에 유입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만5000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주 소로리 볍씨는 가와지볍씨의 조상 격에 해당하는 순화벼로 일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출현, 적어도 벼가 한반도에 먼저 서식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북부 서해안 지역일수록 오래된 쌀이 자리했고 쌀이 북방으로부터 전해진 작물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결과 였다. 세계 도처에서 가와지볍씨의 발견은 큰 이슈가 됐다. 특히 일본은 1994년 9월17일 마이니치 신문 1면에 ‘5000년 전 쌀 출토, 한반도 최고, 일본의 쌀 루트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가와지 볍씨에 대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 아수카 자료관 구가쿠 학예실장은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약 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집은 발견이다”고 소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유물로 세운 박물관

▲ 가와지볍씨 발굴 이후 10년만인 2001년 지어진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의 표지석.
▲ 가와지볍씨 발굴 이후 10년만인 2001년 지어진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의 표지석.

가와지볍씨 발굴 이후 10년만인 2001년, 고양시 원흥동 일대로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이 건립된다. 가와지볍씨 박물관 건립에는 일본 센다이시 공대 고바야시 교수에게 보내진 신년연하카드가 신호탄이 됐다. 가와지볍씨를 사진으로 한 신년연하카드는 가와지볍씨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파됐다는 학설을 뒤엎는 중요 단서였다. 이를 계기로 학술발표회를 열고 연구원들은 가와지볍씨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연구원들은 조상대대로 쌀농사를 지어 온 이곳, 고양에서 볍씨 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발굴 당시 출토된 토기와 볍씨를 전시하면서 2001년 ‘농심테마파크’의 이름으로 문을 열었지만 운영은 미진했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의 의견에 따라 2014년 다시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하면서 가와지볍씨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유물로 지어진 박물관으로 자리하게 됐다

▲ 고양 가와지볍씨 박물관 내부 모습

 

[인터뷰]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고양 가와지볍씨 연구는 발굴에서 끝나선 안 될 일. 볍씨 전문연구팀을 조직해 볍씨 연구의 선도적 역할 해 나가야 할 것.”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발굴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렸다. 가와지볍씨를 발견하던 시기인 1991년의 기술력으로 발굴 작업을 벌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이융조 이사장이 이끌던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조사팀은 오로지 삽자루 하나만을 들고 볍씨 발굴에 뛰어들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연구 환경이 매우 열악한 탓에 발굴에 참여했던 61명의 학생들이 매우 고생해야 했습니다. 기본적인 숙식조차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죠. 발굴과정은 조사팀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손수 삽자루로 땅을 헤집고 일일이 체질을 해가며 발굴을 해 나갔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냐며 한탄 섞인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포기하려던 찰나 한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죠. 볍씨를 발견했다는 외침이었습니다.”

패기 하나만을 가지고 무작정 달려들었던 청년들이 찾은 볍씨 11톨은 전 세계 고고학계를 뒤집어 놓았다. 앞서 여주 흔암리나 김포 가현리에서 발견된 볍씨의 연대보다 2000년이나 앞선 5000년 전의 볍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너비 7mm 남짓의 작은 볍씨 한 톨은 농경문화가 일본으로부터 전파됐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귀한 발견이었다.

“대대적인 언론 보도 이후 저희 팀은 더욱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다른 조사팀들은 모두 철수를 하게 됐고 저를 비롯한 충북대 조사팀 학생들만 남아 2차 발굴에 나서게 됐죠. 결국 100여일 끝에 3000년 된 볍씨를 추가로 발견해 냈습니다.”

▲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가와지 볍씨의 발견으로 한반도의 농경문화가 신석기 시대에서 시작된 점을 밝혀냈고 일본으로 전파됐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고 오히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벼를 전파한 사실을 새롭게 드러냈다. 특히 가와지볍씨의 발견은 현재까지 이어온 볍씨 연구의 초석이 됐다.

“볍씨 연구의 중요성을 알린 신호탄 역할을 가와지볍씨가 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가와지볍씨 박물관이 설립됐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유물을 가지고 박물관을 세운 나라로 알려지게 됐죠. 발굴 볍씨는 각국으로 보내져 고고학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볍씨연구협의체를 가지게 된 것 또한 가와지볍씨 덕분이고요.”

이융조 이사장은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고양시의 명예시민이 됐다. 지난해는 가와지볍씨가 발견된 지 30주년을 맞는 해였다. 모두 성공적인 발굴을 축하하는 가운데 불편한 기색을 내보인 한 사람이 있었다. 이융조 이사장이었다.

“발굴에서 그칠 일이 아니죠. 가와지볍씨의 발굴은 세계사의 한 편을 장식할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국내에 볍씨연구전문기관이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세계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볍씨 연구협의체를 가진 우리나라가 볍씨 연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 나가야 합니다.”

 

[米빙포인트] 세계 가장 오래된 볍씨는 1만5000년된 '韓 소로리'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볍씨는 중국 화북지방으로 1만500년 전으로 기록돼 왔는데, 그보다 3000여년이나 앞선 소로리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97년∼1998년 발굴 작업을 벌여 출토된 볍씨는 바로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연구실로 보내졌고 1만3000년~1만5000년 전의 절대 연대 값을 얻어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판명됐다.

2003년 10월22일, 영국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라는 타이틀로 보도되기도 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사진제공=한국선사문화연구원·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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