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처럼 쌀도 골라먹는 시대
국내 450여종 재배되고 있지만
2019년 도내 64% 일본종 생산

농촌진흥청·경기농기원 합심
대체 토종 '해들·알찬미' 개발
국내외 밥맛 블라인드 평가서
압도적 승리…홍콩 수출까지

어떤 '쌀' 좋아하세요?

커피 원두를 고르듯, 바야흐로 '쌀'을 골라 먹는 시대. 중앙 정부와 각 지자체가 앞다투어 국산 품종 개발에 나서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고시히카리는 가라~ 이제는 국산이 대세. '제4화 품종시대'가 지금 시작된다.

▲ 토종벼가 심어진 양평 토종벼 채종포 단지 사진출처=양평군청

▲종자독립

하나의 씨앗이 사라지는 것은 그 안에 깃든 역사와 문화, 그 맛과 멋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던가?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이 땅 위엔 1451개의 벼 품종이 자라났다. 오랜 시간 한반도의 마을마다 농부의 품성과 지역 문화, 기후, 토양에 따라 다양하게 길들였던 토종 품종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와 근대산업화를 거쳐 대량 생산에 적합한 품종으로 대체됐다.

현재는 450여 품종만이 남아 우리 땅에서 재배되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단일품종 쌀 중 가장 많은 건 아키바레로 26.1%이다. 신동진, 오대쌀, 고시히카리, 일품쌀, 삼광이 그 뒤를 잇는다.

경기지역에서는 총 39만t(2019년 기준)이 생산되는 가운데 64%가 아키바레나 고시히카리 등 일본 품종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 외래품종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는데, 이런 실정을 극복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과 경기도농업기술원은 국내 육성 품종 개발에 나서게 됐고 이는 '알찬미'나 '해들'과 같은 신품종 탄생에 배경이 됐다.

▲ 해들VS고시히카리=사진제공=행안부 공식블로그

과거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던 이천쌀이 일본 품종이어서 되겠냐는 자성에서 출발한 '해들'의 개발은 수요자 참여형 품종 개발 연구(SPP)로 개발됐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해들'은 2016년 농진청이 이천시와 손잡고 외래품종을 대체하기 위한 계획에 따라 개발된 순수 우리 쌀이다. 개발 단계부터 농업인, 지자체, 전문가, 유통업체, 소비자 등의 참여로 탄생하게 된 '해들'은 농업의 수요자 참여형 육종 개발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특히 해들은 2017년 진행한 '국산품종과 외래품종 밥맛 블라인드 평가'에서 무려 48%가 손을 드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쟁 품종이었던 일본품종 고시히카리는 29%에 그쳤다. 알찬미 역시 45%로 2%인 아키바레를 크게 앞섰다. 해들의 경우 일본품종에 비해 수확량도 많았다. 아키바레와 고시히카리의 수확량이 10a당 505㎏, 547㎏이지만 해들과 알찬미는 각각 564㎏, 538㎏으로 나타났다. 덕분에 재배면적은 해들이 보급된 시기인 2019년 545㏊에서 2021년 1020㏊까지 2배 이상 늘어났다. 농진청과 이천시는 우리 품종의 온전한 독립을 선언하고 국내 육성 품종의 재배면적을 올해 7500㏊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현웅조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사는 “해들은 고시히카리를 대체시킨 18번째 최고품질벼다. 알찬미 역시 30년간 재배돼온 추청, 즉 아키바레를 대신하는 최고 품질 벼이며, 홍콩에 시범 수출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며 “경기·충북을 중심으로 진천과 청원 포천 등 여러 지자체에 외래벼 대체용 품종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 대표 쌀 품종 6선

밥맛을 중시하는 외식업계 경향과 맞물리면서 품종 중심의 쌀소비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시류를 반영해 경기지역에서는 우리 쌀 품종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선발 주자 격인 '해들'은 2016년 농진청과 이천시, 농협이 손잡고 수요자 참여형 품종 개발 연구로 개발된 품종이다. 해들은 벼를 키우는 '해'와 벼가 자라는'들'이 합쳐져 가을 햇살에 잘 익은 햅쌀이라는 의미다. 주로 이천지역에서 재배되는 해들은 탄력 있는 식감과 병충해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밥맛은 좋지만 수발아(종자가 이삭에 붙은 채로 싹이 나는 현상)가 문제가 됐던 '고품'과 수발아에 강한 '강원4호'를 교잡해 만든 품종으로 밥맛이 좋고 수확량이 좋아 전국 각지로 확대돼 가고 있다.

해들과 더불어 조명받고 있는 품종 '참드림' 역시 경기지역에서 자라는 품종이다. 낮은 단백질 함량으로 부드럽고 찰진 식감을 자랑해 유럽에도 수출되는 고품질 쌀이다. 은은한 밥 향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천을 대표하는 국내육성품종이 해들이라면 여주의 대표 품종은 '진상'이다. 진상은 아밀로스 함량이 낮아 멥쌀보다 찰기가 좋은데 무엇보다 식어도 단단해지지 않는 것이 강점이다.

경기도 내 쌀 생산량이 가장 높은 화성의 대표 품종은 '골든퀸'이다. 골든퀸은 육종하기 위해 20년이 걸린 품종으로 밥을 지을 때 팝콘 향과 누룽지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아밀로스 함량도 낮아 밥이 차지고 윤기가 흘러 밥맛도 좋다.

경기지역 대표 토종 품종 중 하나인 '맛드림'은 풍미벼와 일품벼를 교배해 개발한 쌀이다. '맛드림'은 밥만 먹어도 맛있을 정도로 밥맛이 우수하고 진한 밥향과 달달한 끝맛이 인상적이다.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 가와지볍씨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개발된 '가와지1호'는 고양시에서 주로 재배된다. 찰기가 있고 식감이 부드러워 중독성 강한 밥맛이 강점이다. 또 압력을 가하지 않고 밥을 해도 차지고 쫄깃한 식감을 유지해 소비자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인터뷰] 현웅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사

▲ 현웅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사
▲ 현웅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사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품종 개발이 필요합니다. 소비자 중심의 우리 쌀로 종자 주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3년 전부터 우리 농가엔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통일벼 개발 이후 50년 만의 성과다. 우리 국산 품종 '해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해들은 농업진흥청이 재배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던 외래품종을 대체하기 위해 이천시, 농협과 손잡고 개발한 쌀 품종이다. 병충해나 자연재해에 강하고 맛도 좋아 여러 농민과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해들을 개발한 현웅조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사는 외래품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국내육성품종의 대체개발과 보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천은 우리나라 쌀 대표 브랜드 임금님표 이천쌀을 갖고 있는데 그 명성과는 다르게 고시히카리나 아키바레와 같은 일본 품종이 재배해 온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품종들이 최근 기후 변화에 따라 병충해가 발생하고 태풍에 쓰러지는 등 품질저하 문제들이 생겨났죠. 새로운 벼 품종 개발이 시급하다고 보고 2016년부터 수요자 참여형 품종 개발에 나서게 됐습니다.”

수요자 참여형 품종 개발은 개발 단계부터 전문가, 지역주민, 농업인, 지자체 등이 참여한다. 소비자 중심으로 육종 연구가 되다 보니 품질이나 현지 실정에 적합한 우수한 품종들이 개발됐다. 덕분에 다양한 맛과 형질을 갖춘 쌀 품종들이 생겨났고 해들의 등장은 쌀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2019년 양재 하나로마트 첫 출하 이후 1주 내 전량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죠. 시식행사에서도 쫄깃쫄깃하고 맛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습니다. 알찬미 역시 밥맛이 우수하면서 외래벼 대비 태풍에 의한 쓰러짐이라던가 도열병에도 강해 농가 소득의 83%가 증가한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지난해 대한민국우수품종상 시상식에서 해들은 장관상을 받았다. 현 연구사는 품종개발단계부터 농업인, 산업체, 소비자가 함께 이뤄낸 '기적'이라며 국민에게 공로를 돌렸다.

“현장에 답이 있습니다. 현장 중심연구의 대표사례인 해들과 알찬미가 이렇게 빠른 시간 확대될 수 있었던 데는 이해당사자분들 간에 협력이 잘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주인이었고 RPC와 해당 지자체의 혁신적 보급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연구사와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은 최근 제2의 해들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나들미'의 보급·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들미는 강화섬쌀 브랜드에 활용돼 온 아키바레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최근 프리미엄 쌀의 수요 증가로 밥맛, 구수한 향 등 다양한 특성을 소비자들이 원하고 있죠. 또 농업인은 고령화로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품종들을 선호하기도 하고요. 이렇듯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품종 개발에 반영해야 합니다.”

 

[米지의 세계] 꼭 먹어봐야 할 8대 쌀

경기 해들: 21년 올해의 품종상으로 선정될 만큼 밥맛이 좋다.

강원 오대: 구수하고 단맛나 카레 등 소스 요리와 어울린다.

충북 참드림: 질감·찰기 우수하다. 한정식 요리에 어울린다.

충남 삼광: 밥 짓기 좋은 점도로 소스 요리와 잘 어울린다.

경북 일품: 밥맛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경남 영호진미: 밥맛이 매우 좋아 돌솥·냄비 밥에 어울린다.

전북 신동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며 쌀이 타 품종보다 1.3배 커 식감이 좋다. 국밥 등 국물 요리에 적합하다.

전남 새일미: 완전미율이 높고 밥맛이 양호하다. 김밥의 용도로 먹을 때 좋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관련기사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제 15화 경기미 어제와 오늘 지금은 남아도는 쌀, 60~70년대만 해도 쌀이 귀해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을 우린 기억한다. 지난날 영화를 누리던 '경기미'는 온데간데없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우리 쌀. '경기미'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어 본다.▲가짜 경기미경기미의 명성은 여전하다. 조선 초기 '임금님께 진상하던 쌀'이라는 인식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다. 지금도 쌀 하면 경기미를 최고로 내세울 만큼 고급 쌀의 대명사로 불린다.실제 경기미는 타 지역의 쌀과 비교해 약 25%보다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비싼 가격에도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제 16화 '반백년 농사일기' 조팽기 옹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 문화는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서구화 된 식단에 밀려 점차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쌀'. 동시에 사라져간 '쌀의 추억'.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2부>에서는 경기미의 옛 이야기를 쫓아 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기인들의 쌀 문화, 쌀에 대한 썰(說)을 풀어본다.# “지금도 쓰고 있지. 눈이 안 보여도 써 오던 습관이 있어서 펜을 놓칠 못해. 애초에 40년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채워야겠더라고. 내년이 딱 일기 써 온지 40년 째야.”기억은 짧고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