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개항과 동시에 세계 다양성을 갖춘 문화예술을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도입한 도시다. 그 명성답게 지금도 문화 운동과 예술 활동이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다. 특히 전통의 고전과 실험적인 현대의 도전이 공존하는 문화예술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런 활동의 중심에 예술 공간이 존재한다. 거점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모이고 창작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일보는 지역 곳곳에 숨어 잘 드러나진 않았으나 이미 중요한 기능을 하는 예술 공간을 발굴해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우범지역'이던 지하보도, 동아리들 연습실로 변신

연수고가차도가 끊은 거리 잇던 지하도
노후화로 사람들 피하는 애물단지 신세
연수구, 493.9㎡ 면적 7개로 구획 공사
공연 연습실·드럼 연주실 등 시설 설치
음습했던 통로도 갤러리 홀로 재탄생

▲ 507 문화벙커 전경./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 507 문화벙커 전경./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인천 연수구 청학동, 지번 507번. 연수고가차도로 단절된 거리를 잇는 지하보도 자리다. 길을 건너가려면 지하 통로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면 되지만 으슥하고 눅눅한 이 지하보도는 점차 외면당했다. 1994년 만들어진 이 시설은 갈수록 노후하고 발길이 닿지 않아 우범지역이 되어갈 뿐이었다.

애물단지처럼 방치됐던 이 장소가 지금은 연수구의 핵심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완벽한 새 단장을 거쳐 지하보도에 연수구 동아리 연습 장소를 조성한 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이 꼭 필요했던 생활문화 장소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 507 문화벙커 내부.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 507 문화벙커 내부.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자생 동아리들의 행복한 창작 활동 보장

휑하고 음침하기만 했던 낡은 지하보도는 연수구의 아이디어로 대공사를 진행했다. 지하 1층 연면적 493.9㎡를 7개 공간으로 나눠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120개에 달하는 관내 동아리들이 모여 연습할 공간은 워낙 부족했다. 오직 ‘진달래 생활문화센터’만이 그 기능을 했었는데 수요보다 공급이 아주 달렸다.

연수구는 이 지하보도에 커뮤니티카페, 공연 연습실, 다목적실, 드럼 연주실, 사물함 공간, 갤러리 홀 등을 설치했다.

해당 장소 지번을 들어 ‘507 문화벙커’라 이름을 짓고 연수문화재단이 위탁운영을 시작했다.

그 이후 거의 매일 대관이 꽉 찰 정도로 동아리 회원들의 호응은 높았다. 연극, 무용, 댄스,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연습하기 최적인 공간이 쾌적하게 제공됐다.

소음으로 가정에서 하기 어려운 드럼이나 관악기 등을 연주할 수 있도록 1인 공간도 주어졌다. 공간 대여는 모두 무료다.

 

▲ 507 문화벙커에서 연습하고 있는 동아리 회원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 507 문화벙커에서 연습하고 있는 동아리 회원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일반 주민도 사용 가능한 예술 공간으로 거듭나

동아리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 역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갤러리 홀에서 상시 전시가 진행돼 관람하고 작가인 경우 전시회 개최가 가능하다.

507 문화벙커는 연결 통로로서의 역할도 유지하고 있다. 기존의 지하보도 길 구조를 그대로 뒀기 때문에 맞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

이때 무섭고 위험했던 과거의 지하보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동아리들이 연습하는 활기찬 소리를 들으며 복도에 전시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다.

양희성 연수문화재단 시민문화팀 대리는 “자칫 흉물로 불편할 수 있는 장소를 문화예술 시설로 성공적인 변화를 시도했다”며 “더욱 많은 동아리와 시민이 혜택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활용 계획을 더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주방 소품 가게, 지역주민 '창작터'로 개방

송도 커낼워크에 위치한 리빙 편집숍
인천 연수문화재단 '문화등대' 사업 진행

▲ 헤라의 정원 전경.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 헤라의 정원 전경.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커낼워크에 아담하고 예쁜 리빙 편집숍 ‘헤라의 정원’이 있다. 인테리어와 주방 소품을 판매하는 곳이지만 최근 여기가 지역 주민들의 문화 활동 공간으로 변모했다.

인천 연수문화재단이 추진하는 '우리동네 문화등대' 사업을 진행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헤라의 정원에서 참가자를 모집해 도자기 관련 생활용품을 다 함께 만드는 수업을 추진한 데 이어 올해에는 소모임으로 지속가능한 주민 커뮤니티를 결성할 예정이다.

▲ 헤라의 정원 내부./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 헤라의 정원 내부./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조미경 이곳 대표가 직접 겪은 경력 단절의 경험을 살려 지역 내 ‘경단녀’ 주제 모임이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하던 일을 멈춘 데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사회생활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한다. 요리와 플레이팅, 각자 먹을 것을 가져오는 파티 등을 매개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상업시설이 서로의 삶과 꿈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창작의 공간으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문화재단은 이런 공간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일상적 문화도시의 터전을 곳곳에 마련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등대지기'를 선정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자생하는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연수문화재단은 지난해 6개의 문화등대 사업을 추진한 데 이어 올해는 4개를 더 확장해 10곳을 진행키로 했다.

또 헤라의 정원은 무명 작가들의 판로가 되기도 한다. 도자기, 나무, 천 등을 소재로 만드는 작가들의 공예품을 발굴해 대중에게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뷰] 조미경 헤라의 정원 대표 “예쁜 물건 공유하던 곳, 경단녀 재능 펼칠 공간으로 사용”

▲ 조미경 헤라의 정원 대표./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 조미경 헤라의 정원 대표./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10여년간 광고 디자이너로 일했던 조미경 대표는 결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며 일을 그만뒀다. 아이들이 커가며 자아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예쁜 그릇과 집안 꾸미기에 도움이 될 물건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자그마한 가게를 열었다.

“처음엔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운 물건을 공수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과정이 뿌듯했습니다. 그저 그렇게 시작한 일을 지금은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확장하고 있어요.”

지난해 5월 헤라의 정원 문을 연 조 대표는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자신과 같은 과정을 거쳤으며 거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또 그들의 재능을 활용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방법을 궁리한 끝에 이 공간을 그렇게 사용하기로 했죠. 예술작품 만들기 체험과 더불어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정기적인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인천일보·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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