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고려 고취...교묘 행차땐 또 달랐다

고려의 고취는 당나라 제도를 참고하였을 뿐 고려만의 독특한 고취를 운용하고 있었다. 노부와 의장에서 중국과 다른 고려만의 제도를 운용한 것이다. 특히 의장에서 보이는 다수의 선인은 고려만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려는 교묘(郊廟)에 행차할 때 이전에 언급했던 고취와는 다른 제도를 운용하였다.

교묘의 행차에서 방각을 쓰고 자주색 공복(公服)을 입고 홍정을 찬 교방(敎坊)의 악관 100명이 좌우에 나누어 서며, 안국기(安國伎) 한 무리와 잡기(雜伎) 한 무리, 각각 40인은 좌우에 나누어 섰다. 고창기(高昌伎) 한 무리 16명은 왼쪽에 서고, 천축기(天竺伎) 한 무리 18명은 오른쪽에 섰으며, 연악기(宴樂伎) 한 무리 40명은 좌우에 나누어 섰다. 입각을 쓰고 자주색 보상화(寶祥花)가 그려진 대수의(大袖衣)를 입으며 가은대를 두른 취각군(吹角軍) 한 무리 20명은 좌우에 나누어 서되, 모두 어가(御駕)의 앞에 섰다. 조사모자(皀紗帽子)를 쓰고 자의를 입으며 가은대를 두른 취라군(吹螺軍) 한 무리 24명은 어가의 뒤에 섰다.

금정(金鉦), 강고(掆鼓), 도고(鼗鼓)의 악기를 사용한 고려의 고취와 달리, 이 경우에는 취각군(吹角軍) 20명과 취라군(吹螺軍) 24명이 어가의 앞뒤에서 연주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예는 왕이 봉은사 진전을 참배할 때의 위장에서도 발견된다. 이때에는 교방(敎坊)의 악관 100명과 안국기와 잡기는 각각 40명, 취각군사 16인이 어가의 앞에 서고, 취라군사 24명이 어가의 뒤에 섰다.

이것 이외에도 취각군사와 취라군사가 어가의 앞뒤에서 연주한 경우는 중동팔관회 때의 위장, 왕이 서경과 남경을 순행할 때의 위장, 서경과 남경의 순행에서 돌아올 때 어가를 맞아들이는 위장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금정, 강고, 도고뿐만 아니라, 취각군사와 취라군사가 동시에 사용된 경우도 있는데, 중동팔관회 때 왕이 간악전으로 행차하는 노부에는 도고가 20개, 강고가 10개, 금정이 10개, 취각군사는 10명이 동원되었다. 사면령을 선포할 때의 노부에서는 강고는 10개, 금쟁은 10개였으며, 취각은 20개인데, 모두 좌우에 나누어 세웠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교방악관, 잡기, 안국기, 고창기, 천축기, 연악기이다. 잡기는 백희(百戱)라고도 하는데, 난쟁이 흉내[侏儒戱]와 창우희[倡優戱]를 지칭한다. 1123년(인종 원)에 송(宋)의 국신사 일행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이 한 달 남짓 고려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의하면, “백희는 수백 명이 있는데 모두 매우 민첩하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고려사>나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잡기나 백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찾을 수는 없다. 다행히 고려 말 이색이 지은 <목은집>에는 ‘구나행(驅儺行)’이라는 시를 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잡기에 대한 실마리를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중략)

오방귀와 백택의 춤을 덩실덩실 추고 / 舞五方鬼踊白澤

불 토해 내기 칼 삼키기의 묘기를 펼치네 / 吐出回祿呑靑萍

서역의 나라 사람 고월의 가면극에는 / 金天之精有古月

혹은 검고 혹은 누렇고 눈은 새파란데 / 或黑或黃目靑熒

그중 늙은이는 굽은 허리에 키가 커서 / 其中老者傴而長

모두가 남극 노인이라고 경탄하거니와 / 衆共驚嗟南極星

강남의 장사꾼은 사투리를 조잘대면서 / 江南賈客語侏離

날리는 반딧불처럼 진퇴를 경쾌히 하지 / 進退輕捷風中螢

신라의 처용은 칠보를 몸에 장식하고 / 新羅處容帶七寶

꽃 가지 머리에 꽂아 향 이슬 떨어질 제 / 花枝壓頭香露零

긴 소매 천천히 돌려 태평무를 추는데 / 低回長袖舞太平

발갛게 취한 뺨은 술이 아직 안 깬 듯하고 / 醉臉爛赤猶未醒

황견은 방아를 찧고 용은 여의주 다퉈라 / 黃犬踏碓龍爭珠

춤추는 온갖 짐승이 요 임금 뜰 같고말고 / 蹌蹌百獸如堯庭

(중략)

 

‘구나행(驅儺行)’에는 불의 신(神) 회록(回祿)이 입으로 토해 내는 기예인 토화(吐火), 보검인 청평검(靑萍劍)을 입으로 삼키는 기예인 탄도(呑刀) 그리고 바람 속의 반딧불이처럼 가볍고 날래게 진퇴하는 줄타기의 기예들도 등장한다. 또한 처용무, 태평무, 오방무뿐만 아니라, 고대 전설적인 신수(神獸)인 백택의 춤과 고월의 가면극도 등장하며, 방아를 찧는 누런 개와 여의주를 다투는 용, 온갖 짐승이 춤추는 잡상(雜像)의 놀이가 있었음을 ‘구나행’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런데 안국기, 고창기, 천축기, 연악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안국기는 중앙아시아 아무르강 근처인 보카라(Bukhara)에 위치한 안국의 기예를 말하고, 천축기는 인도의 예술을 말하며, 고창기는 중국 신강성에 자리 잡은 고창국의 기악이다. 그런데 인도나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외래 연희단이 왜 고려에 머물면서 공연을 펼쳤던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고구려 시대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송성섭 풍물미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