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대씨, 아버지·형 손 잡고 16세에 이주…70년 흘러
한강하구 평화의 배 조직위, 실향민 참여 행사 개최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서 제 올려 “고향 생각 간절하다”
인천연 “이산가족상봉센터 필요, 교동도 거점 활용을”
▲ '2022년 한강하구 평화의배 띄우기 평화기행'이 열린 28일 인천 강화군 볼음도 은행나무 앞에서 실향민들과 관계자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열여섯 살 소년은 아버지와 형의 손을 잡고 물길을 따라 교동도에 왔다. 다른 가족들은 집에 남았다. 잠시만 머무르면 될 줄 알았다. 고향인 황해도 연안군과 교동도는 지척이었다. 배로 10분이면 오갈 거리를 두고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볼음도에서 마주한 은행나무는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28일 '한강하구 평화의 배 조직위원회'가 인천 강화군 볼음도에서 진행한 평화기행 참가자 최종대(87)씨는 “은행나무를 보니 고향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제304호인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는 '북한 연안은행나무'(북한 천연기념물 165호)와 부부나무로 전해진다. 800여년 전 황해도 연안군에서 홍수로 떠내려온 수나무를 볼음도 사람들이 심었다는 얘기다. 열여섯 살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최씨는 연안은행나무 바로 옆 동네에 살았다. 최씨는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할아버지가 됐다”고 했다.

정전협정 69주년을 맞은 27일부터 이틀간 강화도와 볼음도에서 '실향의 아픔을 한강하구 평화의 씨앗으로'를 주제로 평화컨퍼런스·평화기행 행사가 열렸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컨퍼런스에서 “강화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고, 교동도는 전쟁의 상처와 회복이라는 과제가 살아 있는 곳”이라며 “강화·개성·해주를 잇는 서해경제해양벨트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평화벨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하구를 사이에 둔 인천과 황해도에는 실향의 아픔이 서려 있다. 인천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난달 기준 인천 이산가족 생존자는 3580명(8.1%)이다. 전국 이산가족 생존자 출신지는 황해도가 9365명(21.2%)으로 가장 많다. 남근우 연구위원은 “금강산 상봉 시설과 함께 우리 측 지역에도 남북이산가족상봉센터가 필요하다”며 “강화군 교동도를 남북 인도적 문제 해결의 거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강하구는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으로 중립수역이 됐다. 2018년 9·19 군사합의 이후 남북 공동 수로조사도 이뤄졌지만, 뱃길은 열리지 않았다. 2005년부터 민간선박 항해를 촉구하며 뱃머리를 한강하구로 향하는 평화의 배는 오는 9월19일 다시 뜬다. 실향민 2세인 김영애 조직위 상임대표는 “교동도는 이웃과 왕래하던 뱃길이 피난 경로가 된 후 실향민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가는 집성촌이 됐다”며 “이산가족을 인권 문제로 접근해 국가가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