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4회초 - 괴물과 짐승의 시대

꼭 필요한 순간 터트린 '결정적 한 방'

▲외야수 '리틀쿠바' 박재홍
데뷔하자마자 프로야구판 뒤집은 '괴물 신인'
최초 30-30·만장일치 신인왕 등 숱한 업적
유니콘스·와이번스 맹활약 수차례 우승컵


▲외야수 '짐승수비' 김강민
인천에서만 22년째 역대 최장기 '원클럽맨'
빠른 판단·강한 어깨 최고수준 수비력 과시
대기만성형 선수…올해도 나이 잊은 영향력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창단과 동시에 등장한 '괴물 신인' 박재홍(49)은 인천 연고팀은 물론, 프로야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00년 SK 와이번스가 창단 첫해 신인으로 지명한 김강민(40)은 공수주에서 꾸준한 기량을 과시하며 프로야구 최장 '원클럽맨'이 됐다. 두 선수가 한솥밥을 먹었던 시절, SK 와이번스는 '왕조'로 불렸다. 인천 야구장을 주름잡은 '괴물'과 '짐승'의 출현은 프로야구 판도마저 뒤흔들었다.

 

 

외야수-'호타준족' 박재홍

1996년 4월16일 현대 유니콘스 박재홍은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회 첫 타석 홈런에 이어 5회 3루타, 6회 2루타를 쳤다. 사이클링히트까지 단타 하나만 남겨놓은 8회 마지막 타석에서 투수는 볼만 네 개를 던졌다. 대기록은 날아갔지만, 상대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프로에 데뷔한 지 고작 세 경기만이었다.

▲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30홈런∙30도루를 세 번이나 기록한 박재홍. /SK 와이번스 2008년 팬북
▲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30홈런∙30도루를 세 번이나 기록한 박재홍. /SK 와이번스 2008년 팬북

1996년 야구계는 박재홍의 일거수일투족으로 들썩였다. 75경기 만에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신인으로 처음 올스타 최다 득표 주인공이 됐다. 그해 9월3일 잠실구장 담장을 넘기며 프로야구 최초로 30홈런과 30도루를 동시에 달성했다. 데뷔 시즌 '30·3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미국에도, 일본에도 없었다. 전인미답의 고지에 오르며 홈런왕·타점왕을 차지한 박재홍은 역사상 유일한 만장일치 신인왕에 올랐다. 골든글러브 최다 득표도 그의 몫이었다.

▲ 1996년 5월5일 인천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더블헤더에서 홈런 3개를 몰아친 박재홍이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박재홍은 데뷔 첫해 인천 연고팀 최초 홈런왕에 올랐다. /인천일보 필름 자료
▲ 1996년 5월5일 인천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더블헤더에서 홈런 3개를 몰아친 박재홍이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박재홍은 데뷔 첫해 인천 연고팀 최초 홈런왕에 올랐다. /인천일보 필름 자료

프로야구 40년을 맞아 인천 야구인 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투표에서 박재홍은 외야수 후보 8명 가운데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총 3명(중복투표)을 선정한 외야수 부문에서 박재홍은 33표를 얻었다. “KBO 리그 최고 수준”, “공수주 겸비”, “최고의 공격력” 등의 설명은 그가 걸어온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1996년 9월7일 프로야구 사상 첫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박재홍이 시상식에서 기뻐하고 있다. /인천일보 필름 자료
▲ 1996년 9월7일 프로야구 사상 첫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박재홍이 시상식에서 기뻐하고 있다. /인천일보 필름 자료

신인 시절 활약은 서막에 불과했다. 박재홍은 이듬해 부상으로 한 달 넘게 결장하고도 3할2푼6리 타율에 27홈런·22도루로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현대 유니콘스 코치였던 양승관은 “노림수가 워낙 좋았다. 악력도 대단한 선수였다”고 말했다.

▲ 역대 최초로 1996년 만장일치 신인왕에 오른 박재홍(오른쪽)이 MVP를 차지한 구대성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인천일보 필름 자료
▲ 역대 최초로 1996년 만장일치 신인왕에 오른 박재홍(오른쪽)이 MVP를 차지한 구대성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인천일보 필름 자료

1998년 30홈런·43도루를 기록한 박재홍은 한국시리즈 이틀 전 연습경기에서 발목을 접질렸지만, 진통제를 맞고 출장해 6경기 동안 안타 9개를 몰아쳤다. 2차전에선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 연속타자(백투백) 홈런 주인공이 됐고, 3차전에서도 쐐기포를 터뜨렸다. 인천 연고팀 첫 우승 주역이었다.

▲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 우승을 이끈 박재홍(오른쪽)과 주장 김재현이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 우승을 이끈 박재홍(오른쪽)과 주장 김재현이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2000년 연고지를 옮긴 현대 유니콘스에서 3할대 타율에 32홈런·30도루·115타점·101득점으로 정점을 찍은 박재홍은 5년 뒤 인천으로 돌아왔다. SK 와이번스 톱타자를 맡아 여전한 존재감도 입증했다. 2005년 박재홍의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 스탯티즈 기준)는 5.51로, 전체 국내 타자 가운데 가장 높았다. 2008년에도 3할대 타율(6위)과 4할대 출루율(2위), 5할대 장타율(3위)로 최정상급 기록을 남겼다.

▲ 2012년 10월 통산 300홈런을 달성한 박재홍(오른쪽)이 SK 와이번스 주장 박정권으로부터 특별 유니폼을 전달받고 있다./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 2012년 10월 통산 300홈런을 달성한 박재홍(오른쪽)이 SK 와이번스 주장 박정권으로부터 특별 유니폼을 전달받고 있다./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프로야구에서 '호타'와 '준족'으로 이름을 떨친 선수들은 많았지만, 그에 필적할 만한 '호타준족'은 없었다. 2000년 박재홍 이후 20년 넘게 국내 타자 가운데 30·30 클럽 가입자는 나오지 않았다. 허구연 KBO 총재는 지난해 저서 '그라운드는 패배를 모른다'에서 “KBO리그가 메이저리그처럼 162경기였다면 리그 최초 40-40 클럽도 가능했던 선수가 박재홍”이라고 했다.

 

 

 

외야수-'짐승수비' 김강민

2018년 11월2일 플레이오프 5차전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연장으로 넘어갔다. 9대 10으로 SK 와이번스가 역전당한 10회말, 선두타자로 타격한 김강민은 공을 쳐다보며 방망이를 집어던졌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수 있는 타구였다.

▲ 22년째 인천에서 '원클럽맨'으로 뛰며 공수주에서 맹활약 중인 김강민./사진제공=SSG 랜더스
▲ 22년째 인천에서 '원클럽맨'으로 뛰며 공수주에서 맹활약 중인 김강민./사진제공=SSG 랜더스

김강민은 플레이오프 내내 1번타자·중견수를 맡았다. 1차전에선 경기 흐름을 가져오는 2점 홈런을 터뜨렸다. 2차전에서도 동점 적시타에 이어 역전 홈런을 때렸다. 프로야구 역사에 명승부로 남은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MVP는 김강민에게 돌아갔다. 한국시리즈 우승의 발판이 된 활약이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인생 최고의 경기”라고 말했다.

▲ 2018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점 홈런을 터뜨린 김강민이 환호하고 있다./사진제공=SSG 랜더스
▲ 2018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점 홈런을 터뜨린 김강민이 환호하고 있다./사진제공=SSG 랜더스
▲ 2018년 플레이오프에서 MVP를 수상한 김강민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SSG 랜더스
▲ 2018년 플레이오프에서 MVP를 수상한 김강민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SSG 랜더스

인천 야구인 40명이 선정한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외야수 부문의 한 자리는 22년간 인천 외야를 물샐틈없이 지킨 김강민에게 돌아갔다. 김강민은 17표를 얻어 SSG 랜더스를 대표하는 '거포' 한유섬(15표), 삼미 슈퍼스타즈 간판타자이자 '강견'으로 명성을 떨친 양승관(9표)을 앞섰다. 입단 동기인 SSG 랜더스 코치 정상호는 “팀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주축 멤버”라고 말했다.

▲ 2019년 9월 김강민(왼쪽)이 통산 1500경기 출장 기념식에서 동료 한유섬으로부터 꽃다발을 전달받고 있다./사진제공=SSG 랜더스
▲ 2019년 9월 김강민(왼쪽)이 통산 1500경기 출장 기념식에서 동료 한유섬으로부터 꽃다발을 전달받고 있다./사진제공=SSG 랜더스

김강민은 대기만성의 전형이다. 20대 초반에는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2005년까지 49경기 출장에 그쳤고, 안타도 14개뿐이었다. 수비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2007년 전 경기에 가까운 124경기에 나섰다.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에 오른 야구전문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1991년에 펴낸 책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외야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다. 이것은 직감, 반사 신경,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예측, 그리고 연습의 소산”이라고 했다. 스타트의 중요성을 보여준 선수가 김강민이었다. 빠른 타구 판단을 바탕으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며 다른 선수들이 다이빙해야 겨우 닿을 법한 공을 여유 있게 잡아냈다. 외야에서 홈까지 노바운드로 도달하는 송구로 주자를 묶었고, 홈런성 타구는 담장에 기대며 동물적 감각으로 걷어냈다. 외야를 누비는 그에겐 '짐승수비'라는 별칭도 붙었다.

▲ 빠른 타구 판단과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김강민에겐 '짐승수비'라는 별칭도 붙었다./사진제공=SSG 랜더스
▲ 빠른 타구 판단과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김강민에겐 '짐승수비'라는 별칭도 붙었다./사진제공=SSG 랜더스

2010년 김강민은 처음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2013년과 2014년에도 2년 연속 3할 타자로 이름을 새겼고,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를 기록했다. 김강민은 데뷔 이후 22년간 '원클럽맨'으로 뛰었다. 프로야구 40년 역사에서 그보다 오래 한 팀에서 활약한 선수는 없다. 올해에도 김강민은 중견수로, 결정적 순간에는 대수비·대주자로 나선다. 김강민과 철벽 외야를 구축했던 SSG 랜더스 코치 조동화는 “철저한 관리로 나이가 무색하게 '짐승수비'가 살아 있다”며 “원클럽맨으로 네 번의 우승을 이룬 선수”라고 말했다.

 

/이은경·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외야수 박재홍 “1996년, 인천팬들에겐 최종병기 같지 않았을까”

10년째 해설위원 활동…“아직도 해설 어려워”
“'괴물' 타이틀 영광…신인들에 동기부여되길”
“30홈런-30도루 세 차례 달성, 가장 큰 자부심”

2013년 5월18일 은퇴식에서 박재홍은 빗속에도 가득 들어찬 문학구장 1루 관중석을 향해 “못다 한 도루는 해설을 하면서 여러분 마음을 훔치는 걸로 대신 채우겠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최초 300홈런·300도루 대기록 달성에 도루 33개만을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난 그는 올해로 해설위원 10년 차를 맞았다. 지난 5월14일 중계를 위해 문학을 다시 찾은 박재홍은 “아직도 해설이 어렵다”고 말했다.

 

▲'괴물 신인'으로 첫해부터 주목받았다.

-'괴물'이라는 타이틀은 양준혁·이종범 선배가 먼저 가졌다. 그 대열에 같이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신인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가장 자부심을 갖는 기록은.

-누적 기록은 후배들이 뛰어넘을 거라고 본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30(홈런)·30(도루) 클럽'에 세 번 가입했던 거다. 한 번씩 달성했던 선수들은 있지만 당분간 세 번은 어렵지 않을까.(웃음)

 

▲데뷔 시즌 인천 연고팀에서 처음으로 리그 홈런왕에 올랐는데.

-그런 기록은 몰랐다. 만년 하위권으로 설움을 당했던 인천 야구팬들에겐 최종 병기가 생긴 느낌이 아니었을까.(웃음) 현대 유니콘스가 강팀으로 도약하면서 입단 첫해 센세이셔널하지 않았나 싶다.

 

▲'국제용 선수'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지금 시점에서 보면 때를 잘못 만났다는 생각도 든다.

-시대적 흐름이라는 게 있다. 그래도 그때 활약으로 중년 야구팬 기억에 남아 있다. '92학번'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많은 경기를 뛰었던 노하우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은퇴 이후 줄곧 해설위원 길을 걸었다. 지도자로 그라운드에 돌아오고 싶진 않은지.

-선수 시절 언론과 별로 안 친했는데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웃음) 언젠가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지금 하는 일이나 똑바로 해야겠다는 마음이다. 야구판에 계속 몸담고 있으니까 다른 욕심은 없다.

 

/글·사진 이은경·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어떻게 선정했나

인천일보는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인천 야구인 40명과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를 선정했다. 투수 3명(우완·좌완·구원)과 포수, 내야수(4명), 외야수(3명), 지명타자 등 총 12명이다.

올스타 후보는 42명이 추려졌다. 인천 연고팀에서 3년 이상 활동한 선수 가운데 KBO 공식 시상식과 골든글러브 수상자, 올스타전 베스트 멤버를 기준으로 삼았다. 국가대표로 각종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도 목록에 올랐다. 2000년대 이전에는 프로 선수들의 국가대표 출전이 불가능했던 점을 고려해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구성됐던 한일 슈퍼게임 멤버도 반영했다. 2002년 SK 와이번스가 선정한 '인천 프로야구 20년 올스타'도 포함했다. 투수 포지션의 경우, 인천 연고팀에서 500이닝 이상 투구한 선수 가운데 선정 요건을 충족한 후보들로 올스타를 뽑았다. 

5월18일부터 6월22일까지 진행된 투표에는 야구인 40명이 참여했다. 특정 시기에 몰리지 않도록 20대(5명), 30대(10명), 40대(10명), 50대(10명), 60대 이상(5명) 등 세대별로 배분했다. 20대는 SSG 랜더스 현역 가운데 인천 출신 선수로 한정했고, 30대는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 연고팀 3년 이상 활동 선수로 추렸다. 공정한 투표를 기하기 위해 올스타 후보는 투표인단에서 제외했다.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투표인단 (가나다순)

20대(5명) - 김교람(SSG 내야수), 김정우(SSG 투수), 김택형(SSG 투수), 이정범(SSG 외야수), 하성진(SSG 내야수)

30대(10명) - 김성현(SSG 내야수), 김태훈(SSG 투수), 문승원(SSG 투수), 박민호(SSG 투수), 서진용(SSG 투수), 오준혁(SSG 외야수), 이현석(SSG 포수), 이흥련(SSG 포수), 정정호(서화초 감독), 하재훈(SSG 외야수)

40대(10명) - 고효준(SSG 투수), 김영수(인하대 코치), 손지환(SSG 코치), 송순석(동인천중 감독), 엄정욱(엄정욱베이스볼아카데미 감독), 이대진(SSG 코치), 이양기(동산고 감독), 정경배(SSG 코치), 정상호(SSG 코치), 조동화(SSG 코치)

50대(10명) - 강필선(제물포고 감독), 계기범(인천고 감독), 김원형(SSG 감독), 김정준(SSG 데이터센터장), 김홍집(부평구리틀야구단 감독), 류선규(SSG 단장), 장광호(덕적고 감독), 전형도(SSG 코치), 정원배(인하대 감독), 조원우(SSG 코치)

60대 이상(5명) - 김시진(KBO 경기운영위원), 김재현(전 동산고 코치), 김학용(전 동산고 감독), 양후승(전 인천고 감독), 임호균(한국독립야구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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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를 신흥 명문 구단으로 도약시킨 좌타자들의 활약은 '인천 SK' 구호가 물결을 이룬 문학구장에서 한국시리즈의 첫 번째 페이지를 열었다. 외야수-'국민 우익수' 이진영2003년 10월19일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문학구장은 3만 [구도 인천] 슈퍼스타즈의 슈퍼스타…장명부·임호균·양승관 찰나의 환희와 기나긴 한숨이 이어진 3년 반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잠깐 반짝였고,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별빛이 명멸하는 동안 마운드에서 장명부는 초인적인 투구를 거듭했고, 임호균은 공 하나하나에 승부를 걸었다. 양승관의 방망이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쏘아올렸다. 그들이 그라운드에 나설 때면 슈퍼스타즈는 슈퍼스타즈일 수 있었다. '불멸의 기록' 장명부1985년 6월21일 인천구장은 4914명의 관중들로 채워졌다. 그해에도 어김없이 꼴찌에 머문 삼미 슈퍼스타즈 고별 경기였다. 마운드에 오른 장명부는 1회부터 8실 [구도 인천] 돌핀스 돌풍의 주역…정명원·최창호·박정현·김동기 1989년 인천 연고팀이 처음 가을야구에 등장했다. 잠자고 있던 구도의 야성도 깨어났다. 인천공설운동장 야구장(도원구장)은 1만3000석이 일찌감치 매진됐고, 입장하지 못한 극성팬들이 철탑에 오르는 소동도 벌어졌다. 2000원짜리 입장권이 2만원에 팔린 암표는 기승을 부렸다.준플레이오프 3경기 선발투수는 박정현·최창호·정명원이 차례로 나섰다. 나란히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그해 태평양 돌핀스가 올린 62승 가운데 40승을 책임진 삼총사였다. 프로야구 최초로 포수 전 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김동기도 변함없이 마스크를 썼다. 돌풍은 멈출 [구도 인천] 결정적 장면들…만년 꼴찌, 한을 풀다 20세기 인천 프로야구는 영욕의 시간들을 보냈다. 드물었던 기쁨 뒤에는 어김없이 슬픔이 찾아왔다. 연패에서 탈출하자마자 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한국시리즈 진출에 환호한 순간 끝내기 패배를 마주했다. 인천 야구의 한을 푼 한국시리즈 우승 끝에는 또 다른 한이 기다리고 있었다. 1985년 18연패와 청보 등장장명부의 초인적 활약에 힘입어 1983년 우승 후보로 떠올랐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듬해 다시 꼴찌로 추락했다. '도깨비팀'이라는 별명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였다.도깨비팀은 1985년 시즌 개막과 동시에 [구도 인천] 결정적 장면들…왕조의 탄생과 부활 '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응원가 '연안부두' 가사처럼 인천은 연고팀과 이별을 반복했다. 그래도 마음마다 설레게 하는 야구는 계속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환희의 순간도 마주했다. 가을의 이야기도 다시 시작됐다. 2000년 현대 연고지 이전2000년 3월16일 시범경기가 치러진 인천구장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원정팀이 안타를 치면 환호가 터졌고, 현대 유니콘스에는 야유가 쏟아졌다. 그날 신문에는 현대 유니콘스는 서울, 신생 SK 야구단은 인천으로 연고지가 결정됐다는 기 [구도 인천] 근성과 감각, 명장의 조건…김진영·김재박 감독 감독과 대행 체제를 오가며 어수선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에도 한 가닥 희망은 있었다.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명장' 김진영(1935∼2020)의 존재였다. 승부사 기질을 타고난 그가 더그아웃에 앉아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성적으로 직결됐다. 명장이 떠나고 부침했던 사령탑은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남다른 감각을 지닌 김재박(68)의 등장으로 마침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 현대 유니콘스 창단과 동시에 감독을 맡은 그는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의 오류도 증명했다. '인천 야구의 [구도 인천] 이기는 리더십, 우승의 조건…김성근·힐만·김원형 감독 야구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다. 1년에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연승과 연패를 거듭한다. 중요한 건 승패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선수단을 통솔하는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때도 바로 이 순간이다.22연승 신기록도 모자라 16연승을 내달린 팀이 있었다. 수염을 깎지 않은 감독의 징크스는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그 이면에는 “승리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여기며 안간힘을 쓴 집념이 있었다. 개막하자마자 6연패에 빠진 팀도 있었다. 야심차게 영입한 외국인 감독은 변함없이 운동장에 먼저 나와 ‘파이팅’을 외쳤다. 정답은 없었다. 두 [구도 인천] 웃터골에서 도원까지…인천야구 애환 품은 운동장 야구의 역사는 곧 운동장의 역사였다. 그라운드를 따라 이야기가 쌓였다. 인천 야구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주하는 웃터골과 인천야구장의 길은 엇갈렸다. 명맥이 끊겼던 웃터골에는 고교야구가 다시 숨을 불어넣었고, '구도 인천'을 일군 인천구장은 자취를 감췄다. 그라운드가 없으면 야구도 없었다. '100년 야구 역사의 발상지' 웃터골1921년 4월17일 인천 학생들을 주축으로 꾸려진 '한용단(漢勇團)'은 일본인 야구팀 '실업단'을 5대 1로 꺾었다. 같은 날 '미가도&# [구도 인천] 문학에서 랜필까지…인천팬 웃고 울린 ‘꿈의 극장’ 인천의 진산인 문학산 자락에 '꿈의 구장'이 터를 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때는 2002년이었다. 월드컵 열기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는 축구를 비췄지만,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문학'이라는 두 글자는 인천 야구와 동의어가 됐다. 또 다른 꿈의 구장은 '구도'의 기억도 소환했다. '꿈의 구장' 문학, '랜필'로 진화2002년 4월9일 인천 연고팀 역사상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이 세워졌다.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 경기에 입장한 관중 수는 2만7044명. [구도 인천] 구도의 영광 이끈 어린 영웅들, 인천야구 '주춧돌로 성장' 야구도시의 뿌리는 학생 야구였다. 일제강점기 경인선 기차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주축을 이뤘던 ‘한용단’ 야구는 시대를 대변했다. 해방 이후 도시 대항 야구와 학생 야구가 전부였던 시절, 인천고와 동산고는 야구의 대명사였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교야구 대회인 청룡기는 1950년대 인천을 떠난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일찌감치 구도는 인천으로 통했고, 인천은 야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였다. '고교야구 왕중왕' 인천고2005년 4월1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인천고와 부산고가 맞붙었다. '한국야구 100 [구도 인천] 구도의 미래 짊어진 새싹들, 마음껏 치고 던질 수 있어야 인천 서화초등학교 야구부원 14명 가운데 졸업은 앞둔 6학년은 9명이다. 초등야구의 고민은 '선수 모집'이다. 정정호(38) 서화초 감독은 “리틀·유소년 야구단 출신까지 피라미드 구조로 몰리니까 중학교 정원은 꽉 차는데, 초등 야구부는 대회 출전이 어려울 정도로 학생이 없다”고 말했다.지난 5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인천지역 중학교로는 26년 만에 입상한 동인천중 야구부원은 42명이다. 중학야구의 고민은 '진학'이다. 송순석(40) 동인천중 감독은 “학년당 10명이 넘는데, 중학야구 팀은 클럽을 포함해 7 [구도 인천] 구도의 산증인들…채병용 코치·배수현 치어리더 오르는 일이 고되지 않을 리가 없다. 높은 위치에 서면 그만큼 책임감도 뒤따른다. 2001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통산 451경기에 등판한 채병용(41)은 1336이닝 동안 마운드에 올랐다. 치어리더 배수현(39)은 20년간, 그러니까 인천 프로야구 역사에서 절반의 시간 동안 응원 단상에 올랐다. 전천후 보직을 자처한 채병용에게 야구는 '생존'이었고, 야구장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배수현에게 야구는 '청춘'이었다.'구도 인천' 9회 연재를 마치고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야구에서 [구도 인천] 구도의 기록자들…김노천 사진가·김은식 작가 야구를 흔히 '기록의 스포츠'라고 한다. 1년에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공 하나하나가 쌓여 순위가 줄 세워지고, 각종 비율이 계산된다.숫자가 기록의 전부는 아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20권 가까운 야구 서적을 펴낸 작가 김은식(50)이 야구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돌핀스 유민'이 가진 추억 때문이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천 프로야구 전속 사진가로 활동한 김노천(57)에게 매일 천 번 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 야구장은 '평생직장'이었다.추억을 써내려간 김은식의 문장과 [구도 인천] 김광현 이전, 인천 마운드 지배했던 '원조 왼손 에이스' 퍼펙트 게임. 야구에서 투수가 9회까지 모든 타자를 아웃시키며 끝내는 경기다. 안타와 사사구는 물론 실책으로도 타자가 1루에 나가면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다. 퍼펙트 게임의 희소성은 숫자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프로야구 40년 동안 투수 한 명이 안타와 점수를 내주지 않는 '노히트 노런'은 열네 차례 나왔지만, 퍼펙트 게임은 한 번도 없었다.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실업야구 리그에서 최초의 퍼펙트 게임을 이룬 투수가 있었다. 동산고 출신으로 1950년대 '구도 인천'의 좌완 에이스로 활약했던 고순선(83)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