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거처 제공
사업 전 재산 쏟아부은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생전 모습과 관련 사진./사진제공=최재형 기념사업회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아십니까.

하얼빈 의거를 앞둔 안중근 의사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사업해서 번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신문을 발행하고 수많은 학교를 세우는 등 그의 따뜻한 온기를 쐬지 않은 사람이 없다하며 페치카(러시아식 난로)라 불리던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이 인천에 살고 있다.

바로 러시아에서 온 최 일리야(21)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 콘스탄틴(36)이 주인공이다. 한국에 들어와 알게됐지만 둘은 가까운 친척인 셈이다. 최 일리야는 최재형 선생 장남의 후손, 이 콘스탄틴은 막내 아들의 후손이다.

 


학교 지어 이웃 돕고 독립운동 헌신
러서 부모님이 어릴때부터 들려줘
인천대 유학생활…“편하고 좋아요”

▲ 최 일리야./인천일보DB

“독립운동가 최재형 할아버지의 5대손 최 일리야입니다”

최 일리야는 현재 인천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가 기억하는 최재형 선생은 어떤 뿐이었을까. “우리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최재형 할아버지 사진 보여주며 (얘기해)줬어요. 제 할아버지는 1860년에 태어나셔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싸울 때 할아버지는 독립운동하는 사람을 많이 도와줬어요. 그리고 학교와 집을 짓고 다른 사람을 도와줬어요. 할아버지는 엄청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아요”

최재형 선생의 후손으로 러시아에서 학교를 다니던 최 일리야와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하게 맺어졌다. 최재형 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2019년부터 인천대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한국생활은 최 일리야에게는 쉽지 않았다. 한국어도, 한국생활도 서툴렀고 특히 가족 친구와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짧게 배운 한국어 실력으로는 전공과목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저는 지금 1학년 학생이라서 어렵습니다. 여전에 러시아에서 같은 수업 들었는데 지금 (한국에서) 물리 아니면 대학수학 수업 들어가 한국어로 들으면 어렵습니다. 얼마전 중간고사가 있었다. 그의 첫 성적은 어땠을까. “다 F(학점) 나왔어요”라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최 일리야는 송도는 물론 인천 곳곳을 자전거로 돌아다녔다. “저는 인천이 좋아요. 여기서는 외국 사람들이 많죠. 한국 사람들이 친절한 사람이라서 문제없어요” 그래도 함박마을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저는 여기서 친구들이랑 살고 있어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요. 여기서 그만 해서 음식 먹어요. 그리고 저는 복싱 운동하고 있어서 그래서 지금 여기서 자주 가 봐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는 일단 학교를 졸업하는게 목표다. “전자공학 분야는 러시아에서 한국에서도 엄청 유력한 분야여서 저는 러시아와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으로의 유학을 도와준 최재형 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과 인천대 최용규 이사장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안산 고려인 사무실서 특별한 경험
최근에 후손 알려지자 대우 달라져
현재 인력 아웃소싱 일…IT 하고 파

▲ 이 콘스탄틴./인천일보DB

최 일리야보다는 일찍인 2016년에 한국에 온 이 콘스탄틴이 최재형 선생의 후손을 알려진 건 최근의 일이다. 인천 함박마을에 살고 있는 이 콘스탄틴이 기억하는 최재형 선생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옛날부터 아버지 어머니가 이런 얘기 했어요. 우리 할아버지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진도 보여줬어요”

특히 그는 한국에서 최재형 선생과 관련한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안산에 있는 고려인 회장 알렉산더 사무실에 갔었는데 거기서 사진을 봤어요. 이분이 누군지(물어봤어요). 알렉산더가 그분(최재형)이라고 설명해 줬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이분이 제 외할아버지 같아요.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진보내주며 확인했어요”

이후 알렉산더 회장이 자신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등 대우가 달라졌다며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인천에서 쭉 살아온 그는 현재 인력사무실 아웃소싱 일을 하고 있다.

“제 일이 사람 찾아야 돼요 사람 뽑아야 돼요. 그리고 회사 같이 들어가서 관리 했어요. 러시아 사람 많으니까 일 때문에 여기(함박마을)가 편해요”

콘스탄틴은 요즘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중 어디서 살아야 할지 고민이다.

“우리한테 여기 편해요. 하지만 부모님 나이 많으니까 이것 때문에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학교 하다가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 IT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한국에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후손들 잘 성장해 너무 뿌듯”

처음 장학사업 출발…현재 11년째
발로뛰며 십시일반 후원자들 모집
연 100여명 고려인 후손에 장학금

▲ 문영숙 최재형 기념사업팀 이사장./사진제공=최재형 기념사업회

최재형 선생 후손을 돕는 일의 중심에는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있다.

그녀는 기념사업회를 꾸려나가며 그의 독립운동 정신을 되살리고 그의 후손까지 보살피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재형 기념사업회는 우연한 기회에 마련됐다.

“2011년 최재형이란 존재를 처음 알았구요. 그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데도 이제 전혀 몰랐었고 또 그분이 학교를 서른두 개나 세우고 또 장학사업도 하시고 그 고려인들의 따뜻한 난로 같은 역할을 하셨다는 걸 알고 (기념사업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장학사업으로 출발했다.

“십시일반 후원자를 발로 뛰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모집을 해서 고려인 장학생을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고요 지금 현재 이제 11년째 됐어요”

지금은 연인원 100여명의 고려인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후 사단법인으로 확대되면서 기념사업까지 하게됐다.

최일리야와의 인연도 정 이사장의 노력 덕분이다.

2018년 7월 경상북도에서 독립운동가 후손 초청 행사에 최재형 선생 후손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다시 몇 년 후 사진 한장으로 인해 한국 유학으로까지 이어졌다.

문 이사장은 고려인 후손에 대한 글을 언론에 연재했는데 그때 보도된 최일리야와 찍은 사진을 보고 최용규 인천대 이사장이 연락을 해 현재 인천대에서 유학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온 최일리야를 위해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작년에 선천성 신장에 문제가 있어서 갑자기 아파가지고 정말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인천성모병원에서 치료비 다 무료로 해 주셨고 또 인천시장님도 도와주셨고, 인천과 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되어 있어요”

문 이사장은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이 한국에서 무사히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했다.

“일리야는 지금 이제 전자공학과 공부를 어렵게 하고 있는데 그래도 엄청 만날 때마다 아주 일치월장하고 있어요.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고요. 이 콘스탄틴이 이제 일리야보다 일찍부터 여기 와서 이제 그렇게 있었는데 우리가 전혀 몰랐어요. 우리가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어서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거라도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단체로 본인이 좀 생각할 수 있도록 그렇게 좀 하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남창섭 기자·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련기사
[창간특집-인천에 온 이주민들] ①인천은 '디아스포라' 도시다 인천일보는 올해 하와이 이민 120주년을 맞아 이주민에 대한 기획연재를 진행합니다. 많은 이주민이 인천에서 떠나고 인천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인천에 들어온 많은 이주민들을 주목했습니다. 이번 기획의 제목은 <디아스포라 도시, 인천에 온 이주민들>입니다.디아스포라(diaspora)는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나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을 일컫는 말입니다.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인천에는 세계 각국에 [디아스포라 인천] ②한국이민사박물관-이민의 어제와 오늘 모두 담았다 1902년 12월22일 월요일 아침 8시, 121명이 동서개발 회사를 출발했다. 이들이 인천세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출국심사를 끝낸 이들은 작은 배를 나눠타고 월미도 해상에 떠 있던 일본 우선회사 소속 기선인 현해탄(겐카이마루)에 올라탔다.오후 2시 드디어 이들은 미지의 세계인 미국 하와이로 떠나게 됐다. 이들은 이틀간의 항해를 거쳐 12월24일 일본 나가사키항에 도착해 신체검사 등을 받았다. 이때 19명이 탈락, 102명만이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 향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이다.1903년 1월13일 [디아스포라 인천] ③“도와주세요…러-우 전쟁 빨리 끝나도록” 우크라이나 고려인 후손 김 베로니카씨(32)는 한국에서 일하다 새로 태어난 딸을 시부모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난 1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시부모가 사는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인 도네츠크주.하지만 2주도 지나지 않아 악몽이 시작됐다. 전쟁이 터진 것이다. 도네츠크지역은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한곳이다.전쟁이 시작되자 베로니카씨는 딸을 데리고 죽음을 무릎 쓴 탈출을 감행했다. “딸을 데리고 배낭만 메고 탈출에 나섰는데 그때가 겨울이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 국 [디아스포라 인천] ⑤인천 함박마을 사람들 인천 함박마을은 고려인 밀집지역으로 유명하다.연수구 연수1동 마리 어린이공원 주변 주택가를 말하며 2017년부터 집단 거주촌으로 변모하기 시작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들과 중앙아시아 현지 출신 외국인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한국의 고려인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 가면 러시아 요리, 러시아 빵 등 이국적인 식료품점과 식당 및 다양한 상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큰 바람은 아이들 교육,동등한 한국민 살기 원해요"증조부 中서 독립운동, 그 후손조모 5살때 '日軍'에 가족 몰살아버지 따라 한국 [디아스포라 인천] ⑥미얀마인의 성지 부평역 인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다니는 부평역 앞. 주말마다 부평역 한쪽에서는 미얀마 청년들이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비록 한국에서 안전한 삶을 살고 있지만, 고국인 미얀마가 군부독재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의 단결을 촉구하고 한국국민에게 관심과 도움을 호소하고 있었다.미얀마 이주 1세대들이 일찍부터 자리 잡은 부평역 일대는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익숙한 만남의 장소로 통한다. 일주일 동안 전국의 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힘들게 일하던 미얀마사람 [디아스포라 인천] ⑦외국인 유학생 전성시대 외국인 유학생들이 국제도시 인천을 찾고 있다.한국말과 문화가 전 세계 곳곳으로 퍼지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외국인 유학생들의 발길이 인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인천은 유학생들에게 특별하다. 한국에 도착해 처음으로 밟는 땅인 인천은 그들에게 한국을 대표한다.실제로 취재를 하면서 한 유학생은 “인천이 한국의 첫 도시이기에 호감이 가는 도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여기에 송도 글로벌캠퍼스 등 유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인천 대표 대학인 인천대와 인하대가 유학생 학업을 위해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디아스포라 인천] ⑧ 인천 '송도아메리칸타운'…먼 타국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곳 인천에는 여느 아파트와 다른 주거단지가 있다. 바로 송도아메리칸타운(사진).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송도아메리칸타운은 830세대 규모의 주상복합으로 지난 2018년 10월 입주를 시작했다.먼 타국 생활을 끝내고 한국 그것도 인천으로 돌아온 이들은 하루하루가 새롭기만하다.수십년 타지 생활에도 낯섦보다 익숙함이 먼저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주 이민 시작, 인천서 마무리”20대에 홀로 한국 떠나 도전드라이클리닝해 사업 기반못해본 여행 원없이 하고파“한국 이민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도시도 인천,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디아스포라 인천] ⑨ 결혼 이주민 “인천 살이 만족…외국인 많이 늘 것 같아요” 초행 길 따뜻한 친절 손길 못잊어초교 갈 첫 째 이젠 한국말 더 잘해바다 인접·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가끔은 별 쏟아지는 '초원' 그리워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온 임연주씨(32)는 한국생활 12년 차다. 몽골 이름은 오츠랄(Uchral).인천에서 남편, 아이와 셋이 살고 있고 현재 둘째를 임신 중이다.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몽골 전통의상 '델'을 입고 온 그녀는 오늘 인터뷰가 너무 소중한 것 같아 입고 왔다고 한다.그녀의 한국행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그녀의 어머니가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한국 남자와 [디아스포라 인천] ⑩ 화교의 한반도 정착사 인천을 대표하는 장소 중 하나인 '인천 차이나타운'. 그곳에는 인천에서 백 년 넘게 살아온 화교들이 지금도 인천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언제부터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했는지, 다른 나라로 간 화교들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한국 정착 과정에서의 애환과 우리 사회에서의 공존 방법은 무엇인지 화교 전문가인 인천대 중국학술원 정은주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았다.정 교수는 한국화교 연구를 시작으로 동남아 및 미국의 화교·화인 연구와 더불어 재미 한인과 중국인을 중심으로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 분야 최고 전문가 [디아스포라 인천] ⑪화교의 유산, 자장면과 팔괘장 인천을 대표하는 화교의 유산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장면이다. 인천에서 탄생해 전국으로 퍼져나간 히트상품이다.100년 넘는 인천 화교의 역사 속에서 자장면과 함께 또 하나의 대표적인 화교 유산이 바로 중국 무술이다.그중에서도 중국 청나라의 황실무술인 팔괘장은 인천으로 전래해 발전하면서 인천 노파 팔괘장이라는 유파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인천의 대표적인 화교 유산인 자장면과 팔괘장, 그 속에 담긴 화교와 한국인의 공존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인천 대표 중국음식점 풍미 조지미 사장고향 처럼~전국민 사랑 맛집 중 손꼽히는 한 곳자장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