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농부 중에 늘 내가 제일 늦게 돌아왔어
농사는 노력한 치 나오는 거거든
작물이 잘 팔려서 땅도 30마지기까지 늘었었지
그런 하루하루를 써버릇했더니 39권째야
애덜한텐 나 죽어도 버리지 말라 했어"

쌀은 생명을 잇는 끼니였고 우리 문화는 쌀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서구화 된 식단에 밀려 점차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쌀'. 동시에 사라져간 '쌀의 추억'. <천년밥상, 경기米이야기 농쌀직썰 2부>에서는 경기미의 옛 이야기를 쫓아 쌀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기인들의 쌀 문화, 쌀에 대한 썰(說)을 풀어본다.

▲ 아래 사진은 조팽기 옹이 39년간 써 온 농사일기다. 최근에 농사일을 손에서 놓으면서 농사 얘기보다 하루 일과가 적혀있다.
▲ 아래 사진은 조팽기 옹이 39년간 써 온 농사일기다. 최근에 농사일을 손에서 놓으면서 농사 얘기보다 하루 일과가 적혀있다.

# “지금도 쓰고 있지. 눈이 안 보여도 써 오던 습관이 있어서 펜을 놓칠 못해. 애초에 40년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채워야겠더라고. 내년이 딱 일기 써 온지 40년 째야.”

기억은 짧고 기록은 길다. 기억은 말갛게 잊혀지고 각색이 덧입혀진 기억은 새빨갛게 왜곡된다. 하찮은 기록이라도 쌓이면 역사가 됐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김구의 백범일지, 안네프랑크의 일기처럼 위대한 명망가들의 삶을 뒷받침했던 것도 기록이다. 위대한 명망가는 아니더라도 위대한 농부 쯤은 되리라. 파주 율포에는 40여년 간 농사일을 기록해 온 이가 산다. 30만 시간의 일기, 조팽기(88)옹이다. 그에게 기록은 일상이자 습관이다.

“지금도 쓰고 있지. 눈이 안 보여도 써 오던 습관이 있어서 펜을 놓칠 못해. 애초에 40년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채워야겠더라고. 내년이 딱 일기 써 온지 40년 째야.”

1983년부터 굳게 먹은 다짐이 서른 아홉해 째 이어져 온 것이다. 몇 년 전, 숙환이 짙어지면서 병원 신세를 져야 했지만, 그 순간에도 고집스럽게 병상일지를 써 내려갔다.

“자식덜은 걱정하지. 침대 드러누워서도 일기 쓰겠다고 떼를 쓰니깐. 자식덜 성화에 못쓴 일기는 집에 와서 마저 썼어.”

겹겹이 쌓여간 시간 속에 덜도 더도 아닌 1년에 딱 한 권씩, 올해도 벌써 서른 아홉번째 일기장의 절반을 채웠다. 세월에 손 때가 묻은 수 십 권의 일기장들은 장롱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우리네 어르신들에게 장롱은 금고나 다름없다. 값지고 귀한 것들은 전부 장롱 속에 있다.

▲ 조팽기 옹이 당신의 주름진 손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마누라가 치매야. 그래서 물건들을 곧잘 내다버려. 일기장도 버릴까 싶어 장농에 숨겨뒀지. 애덜한테도 일러두려고. 내가 죽어도 버리지 말라고 말야.”

한 걸음 떼기조차 불편해진 요즘, 논 일보다 침대 곁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침대 위엔 남루한 담요 한 장과 일기장이 놓였다. 펼쳐진 페이지엔 당신의 하루 일과 대신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적혀있다. 그의 낡은 일기장엔 모처럼 오늘의 인터뷰 일정이 새겨졌다.

때론 단 한번의 사소한 계기가 인생 전부를 뒤 흔들때가 있다. 조팽기 옹이 일기를 쓰게 된 계기도 다를 바 없다.

“친구 놈이 종묘사를 다녔는데 매년 책을 하나씩 가져다 준단 말야. 들춰보니 한칸 한칸 365일이 있어. 모내기 뜨는 얘기, 농약 준 얘기, 그렇게 한 줄씩 쓰다 보니 6~7개월동안 빈칸없이 다 썼더라고. 그날로 시장에 가서 공책을 하나 장만했어. 글씨를 여러자 쓸 수 있잖아. 한자 한자 쓰기 시작하니깐 계속 쓰게 되더라고.”

 

▲ 검게 그을린 피부가 영락없는 농부다. 조팽기 옹이 지난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내가 들어와야 동네 사람들이 다 들어온거래. 껌껌할 정도로 일하는 거야. 농사는 노력한 치 나오는 거야.”

그는 파주 율포리 일대가 수복이 돼 청량리로 잠시 나가 살던 때를 제외하곤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파주 율포리는 조팽기 옹의 고향이자 부친의 고향이기도 했다. 파주 땅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논이며 밭이며 척박한 이 땅은 손길이 닿는 대로 옥토로 변했다. 5 마지기(1500평)에서 일구기 시작한 논은 30여 마지기(1만평)까지 알차게 불어났다.

“스물아홉부터 농사를 지었지. 옛날에 피밥먹고 조밥먹고 살던 땐데도 원없이 쌀밥을 먹었어. 처음엔 1500평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1만평 까지 땅이 커졌어. (모를)손으로 꽂을 때라 힘든게 말도 못한다고.”

만평에 가까운 논에 벼를 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종종 도움을 줬던 건 사랑방에 세들어 살던 군인이었다.

“우리집 사랑방에 소령쯤 돼 보이는 군인이 세를 들어 살았어. 농사일이 손이 많이 드는데 그럴때 1개 중대를 내줘서 한 해 농사를 지었다고. 나는 150명이나 되는 군인들 밥해 먹인다고 가마솥에 쌀을 얹히고 그랬었지. 어느 날은 부식거리를 잔뜩 사다가 강변 시원한 곳에 가져다 놓았는데 강 건너에서 온 도적놈들이 몽땅 훔쳐갔지 뭐야.”

율포리에서 연천으로 넘어가는 중심에는 그의 오래된 집이 있다. 마당부터 안채까지 40년의 시간을 품었다. 서양의 고대 양식을 방불케 하는 높은 천정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세련된 집 많고 많다지만 집을 지을 당시엔 파주에서도 제일 가는 집이었단다.

“인천에 사는 내종사촌이 잘 살았거든. 이 집을 지을 때 돈을 많이 보태줬어. 동네에서 이렇게 크게 지은 사람 없어 파주군에도 우리집이 최고 였지. 내가 마흔여섯에 이 집을 지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애. 나무집은 1000년 가는거야.”

파주군에서 제일가는 건 그의 집만이 아니다. 조팽기 옹의 손으로 키워진 쌀이며 콩이며 작물들은 어디 내 놓아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장에 내다 판 돈으로 5남매를 부족한 것 없이 키웠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축제를 했단 말야. 여기 콩들이 전부 거기로 갔어. 서울 사람들도 그땐 거기 와서 콩을 사갔지. 남파주에서도 와서 여기 콩을 사갔다니까. 검은콩, 쥐눈이콩, 별별 콩이 다나와.”

조팽기 옹은 동네에서도 이름난 농군이었다. 부지런함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

“내가 들어와야 동네 사람들이 다 들어온거래. 껌껌할 정도로 일하는 거야. 농사는 노력한 치 나오는 거야. 그만치 일을 했으니 지금까지 버티지. 힘든 세상이야. 쌀 농사 지어서 자식들 전부 장가, 시집 다 보냈다니깐…”

 

# “우리집은 참 다복해. 딸 둘, 아들 셋… 내가 오죽하면 심청이라고 했겠어.”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농군으로서의 자부심. 파주군 제일가는 집을 지었다는 자부심. 또 한가지 자부심은 당신의 자녀들을 잘 키워냈다는 자부심이다.

“우리집은 참 다복해. 딸 둘, 아들 셋 오남매가 전부 출가했지. 손주 놈들도 열 이나 된다니까. 딸들은 일욜만 되면 빈틈없이 찾아와서 밥해주고 놀아주고 이러고 가. 내가 오죽하면 심청이라고 했겠어.”

자식 농사도 풍년이 들었다. 가을이면 황금 물결을 이뤄내던 만평이 넘던 땅도 그의 손을 떠났다. 뿔뿔이 흩어진 오남매 집 한 채씩 해 준다고 애저녁에 팔아버렸다.

“의정부에 사는 딸내미 집에 갔었어. 가보니 방은 좁은데 여러명이 옹기종기 모여있더라고. 집에 오자마자 땅을 모두 내놨지. 논을 팔어서 집 한 채씩 해줬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채에서 내다 본 지붕선이 멋스럽다. 비오는 날이면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가을이면 풀벌레 소리가 마당 가득 들릴 것이다. 낡고 오래되었기에 더 아름다운 집이다. 조팽기 옹에겐 소박한 바람이 있다.

“내가 군 시절에 키웠던 문배나무가 생각이 나. 7사단이었지 아마. 문배나무에 열렸던 열매가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비료도 주고 그랬는데 살아 있을 때 그 나무를 한번 보면 소원이 없겠어…”

 


 

[경기인의 밥상] 장단콩 두부조림

▲ 반백년 농군의 밥상이다. 고기를 대신하던 장단콩 두부조림이면 고기 반찬 남부럽지 않았다.
▲ 반백년 농군의 밥상이다. 고기를 대신하던 장단콩 두부조림이면 고기 반찬 남부럽지 않았다.

장단콩은 파주시를 대표하는 작물이다. 흔히 메주콩으로 불리는데 장을 담그거나 두부를 만드는데 쓰였다. 파주 적성, 장단 등 파주 북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조팽기 옹에게 장단콩 두부조림은 나물보다 흔한 먹거리였다. 고기를 먹기 힘든 시절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장단콩 농사가 잘 되는 덕에 주로 장단콩으로 만든 음식이 반찬으로 올라왔다. 더군다나 그의 모친은 두부를 만드는 일을 했다. 두부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판 돈으로 살림을 꾸렸다.

지금도 그의 밥상엔 장단콩 두부가 올라온다. 식당을 하던 딸이 조모의 피를 물려받아 두부를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장단콩이 적성콩이라 불렀어. 어머니가 두부를 만드는 일을 하다보니 두부는 원없이 먹었지. 그때는 고기가 귀해 두부가 대신했어. 둘째 딸내미는 의정부에서 식당을 하다 지금은 두부만 만들고 있고 큰 딸은 장단콩으로 된장을 담그는데 된장 맛이 좋아 장터에가서 내다 팔기도 해.”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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