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인천-불타는 그라운드]
8회말-문학에서 랜필까지

2002년 'MLB급 시설' 문학구장 개장
바비큐존·빅보드 등 관중 친화적 진화
작년부터 '인천SSG랜더스필드' 명명

박정권·김강민 등 꿈 키웠던 '드림파크'
최신식 2군 훈련·경기장 '퓨처스필드'
유망주 육성·선수단 전력 강화 뒷받침

인천의 진산인 문학산 자락에 '꿈의 구장'이 터를 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때는 2002년이었다. 월드컵 열기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는 축구를 비췄지만,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문학'이라는 두 글자는 인천 야구와 동의어가 됐다. 또 다른 꿈의 구장은 '구도'의 기억도 소환했다.

 

▲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 인천SSG랜더스필드 전경./사진제공=SSG 랜더스
▲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 인천SSG랜더스필드 전경./사진제공=SSG 랜더스

 

'꿈의 구장' 문학, '랜필'로 진화

2002년 4월9일 인천 연고팀 역사상 한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이 세워졌다.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 경기에 입장한 관중 수는 2만7044명. 그해 관중은 총 40만2732명(평균 6102명)이 입장했다. 1년 전 17만8645명(평균 2666명)보다 2.3배 늘어난 숫자였다. 하위권 성적은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변화는 3만4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문학구장 개장이었다.

2002년 시즌 개막과 동시에 첫선을 보인 문학구장은 '꿈의 구장'으로 불렸다. 천연 잔디와 외야 불펜, 스카이박스 등 최신 시설을 갖춘 메이저리그급 구장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처음 등장했다. 국내 신축 구장은 서울 잠실구장(1982년), 부산 사직구장(1985년), 수원구장(1989년)에 이어 13년 만이었다.

▲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 인천SSG랜더스필드 전경./사진제공=SSG 랜더스
▲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 인천SSG랜더스필드 전경./사진제공=SSG 랜더스

문학구장은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었다. 야구장을 포함한 문학종합운동장 건립 계획이 나온 시기는 1990년 초다. 인천시는 1996년까지 사업비 920억원을 들여 운동장을 지으려고 했다. 걸림돌은 문학산 기슭의 암석이었다. 발파하고 토석을 옮기는 과정에서 민원이 불거졌고, 1994년 7월 착공 이후 실질적인 경기장 공사는 1999년에야 시작됐다.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설계도 변경됐다. 총 사업비는 3266억원(야구장 601억원)으로 불어났다.

문학구장 개장이 희망고문으로 흘러가는 동안 인천 연고팀은 태평양 돌핀스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다시 SK 와이번스로 바뀌었다.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 투수코치를 지낸 김시진 KBO 경기운영위원은 “태평양 돌핀스 코치였을 때 인천시가 1998년에 개장한다고 했다. 야구장 설계 과정에서 마운드에 대한 의견도 제시했는데 돌산이라서 공사가 계속 늦어졌다”고 말했다. 2000년 3월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연고지를 둘러싼 혼란 끝에 인천을 점찍기까진 곧이어 완공될 야구장의 존재도 한몫했다. 최신식 구장에 입주한 SK 와이번스는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개장 10년 만인 2012년에는 인천 연고팀 최초로 연간 100만 관중 시대도 열었다.

▲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 인천SSG랜더스필드 전경./사진제공=SSG 랜더스

야구장 신축 바람이 불면서 중견급 구장이 됐지만, 문학은 지난 20년간 그린존·바비큐존·홈런커플존 등을 통해 관중 친화적 구장으로 탈바꿈했다. 2016년 세계 최대 규모 전광판인 '빅보드' 설치로 끊임없이 변신도 꾀했다. 다만 테이블석과 같은 특별 관중석이 들어서면서 수용 규모는 2만3000석으로 줄었다. 개장 때만 해도 넓은 편에 속했던 중앙 120m, 좌우 95m인 경기장 규모는 신축 구장들에 밀려 '홈런공장'이 됐다.

문학구장도 옛 인천구장처럼 여러 이름을 가졌다. 2014년부터 SK 와이번스가 문학경기장 위탁 관리를 맡으면서 이듬해 '인천SK행복드림구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2021년 신세계가 야구단을 인수한 뒤에는 '인천SSG랜더스필드'로 불리고 있다. 올해 개막 이후 선두를 질주하는 SSG 랜더스 성적과 맞물려 인천SSG랜더스필드 누적 관중 수는 74만1067명(28일 기준)으로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은 “선수들도 올해 완전히 달라진 느낌으로 야구를 하고 있다”며 “관중들의 환호성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 2001년 12월29일 SK 와이번스 선수단이 이듬해 시즌부터 홈 구장으로 사용할 문학구장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인천일보DB

 

또 다른 '꿈의 구장', 드림파크와 퓨처스필드

2001년 4월24일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SK 와이번스 드림파크 전용 연습경기장 개관식이 열렸다. 인하대역 인근,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이다. SK 와이번스는 창단 직후 70억원을 들여 연습장 건립에 착수했다. 옛 유공 저유소가 있던 부지였다.

당시 강병철 감독은 SK 와이번스 구단주였던 손길승 SK그룹 회장을 만나 “연습장이 없어서 애로가 많다. 선수들 숙소도 빨리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고, 손 회장은 연습장 건립을 지시했다. 1980년대 인천 연고 프로축구단 '유공 코끼리' 시설 일부를 활용해 야구 연습장이 만들어졌다. 창고는 숙소로 개조되면서 2군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길이 열렸다.

▲ 2007년 후반기 SK 와이번스는 '구도 인천' 시대를 열었던 인천고와 동산고, 그리고 제물포고 등 고교야구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인천야구 동문존'을 운영했다. 동문존 입장료 일부는 학교 야구부 지원에 쓰였다./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 2007년 후반기 SK 와이번스는 '구도 인천' 시대를 열었던 인천고와 동산고, 그리고 제물포고 등 고교야구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인천야구 동문존'을 운영했다. 동문존 입장료 일부는 학교 야구부 지원에 쓰였다./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드림파크는 이름 그대로 유망주들의 꿈을 실현하는 공간이 됐다. 드림파크에서 땀방울을 흘렸던 박정권·김강민·박재상·조동화 등은 '왕조'로 군림한 SK 와이번스 주축 선수들로 성장했다. 당시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였던 김경기는 “선수들마다 사연이 있었는데 드림파크에서 훈련하고 기량이 발전하면서 스타 플레이어로 떠올랐다”며 “왕조 시대를 열었을 때 구성원을 보니 드림파크 멤버들이 많았다. 지도자 생활을 하며 제일 뿌듯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드림파크 역사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개발 사업이 예고되면서 연습장 철거 계획이 나왔고, 선수단은 2006년 4월을 끝으로 철수했다. 공교롭게도 SK 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07년부터 2군 선수단은 도원구장과 송도LNG야구장을 떠돌았다.

▲ 2002년 시즌을 앞두고 개장했던 문학구장은 그린존·바비큐존·홈런커플존 등 특색 있는 관람석을 설치하며 관중 친화적 구장으로 진화했다. 2009년 첫선을 보인 바비큐존 모습./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 2002년 시즌을 앞두고 개장했던 문학구장은 그린존·바비큐존·홈런커플존 등 특색 있는 관람석을 설치하며 관중 친화적 구장으로 진화했다. 2009년 첫선을 보인 바비큐존 모습./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꿈의 구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10년 초다. SK 와이번스는 연이은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던 전용 연습장 건립에 착수했고, 이듬해 1월 강화군 길상면 부지를 확정했다. 총 450억원을 들여 2013년 4월 첫 삽을 뜬 연습장은 2년간의 공사 끝에 2015년 4월 개관했다. 용현동 드림파크가 문을 닫은 지 꼬박 9년 만이었다.

8만6762㎡ 면적의 새로운 꿈의 구장에는 '퓨처스파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2군 경기가 펼쳐지는 천연 잔디구장과 보조 경기장, 최신식 실내훈련장 등을 갖췄다. 숙박 시설도 1인 1실로, 총 37실이 만들어졌다. SSG 랜더스 창단 이후에는 'SSG퓨처스필드'로 이어지며 육성과 재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2001년 4월24일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옛 저유소 부지에서 SK 와이번스 드림파크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 2001년 4월24일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옛 저유소 부지에서 SK 와이번스 드림파크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사진제공=한국미디어저널

야구단의 현재와 미래는 두꺼운 선수층이 뒷받침한다. 드림파크 멤버였던 박정권 SSG 랜더스 2군 타격코치는 “2군 훈련장은 절실함과 치열함이 모인 공간”이라며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 끌고 가기보다는 뒤에서 밀어준다는 생각으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경·이순민·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 인천 강화군 길상면 SSG퓨처스필드 전경./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인천 강화군 길상면 SSG퓨처스필드 전경./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2027년부터 '청라돔구장' 시대, 인천야구 투자 이어가는 SSG

“인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동안 인천시청과의 인연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지난 24일 인천시청을 방문해 유정복 시장을 만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청라 돔구장 건립 계획을 밝히면서 악연부터 떠올렸다. 1997년 인천터미널에 문을 열었던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2019년부터 롯데백화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롯데가 2013년 인천시와 매매 계약을 체결해 인천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사들이면서다.

유통업계 라이벌 신세계와 롯데가 5년간 법적 분쟁까지 벌였던 '금싸라기 상권'은 인근 구월농산물도매시장 부지에 더해 '롯데타운'으로 복합 개발이 예고돼 있다. 지난해부터 '인천SSG랜더스필드'로 이름 붙은 문학구장과 도보 10분 거리다.

지난해 신세계그룹이 인천 연고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관심은 문학구장 앞날에 모아졌다. 신세계 측은 야구단 인수 발표 직후 “돔을 포함한 다목적 시설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스타필드 청라와 연계해 돔 구장을 건립하겠다고 밝혔고, 인천시는 행정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총 1조3000억원이 투입되는 스타필드 청라와 함께 들어서는 돔 구장은 2만석 규모로 2027년 준공될 예정이다.

프로야구에 얽힌 악연으로 따지면 인천을 따라올 도시는 없다. '구도' 인천에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6개 구단이 둥지를 틀었다. 인천 연고 야구단 변천사는 모기업 변심이 밑바탕에 자리했다. 경영 문제(삼미·청보·태평양)로, 서울이라는 더욱 큰 시장을 향한 욕심(현대)으로, 혹은 알 수 없는 이유(SK)로 앞서 5개 기업은 인천을 떠났다.

청라 돔 구장 건립은 야구단을 장기적으로 운영하려는 신세계 측의 투자 의지로도 읽힌다. 문학구장 활용 과제가 남아 있지만, 인천과 신세계 모두 과거의 악연을 털어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문학구장 활용 방안은 시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아직 3~4년 시간이 있다”며 “문학경기장과 아시아드주경기장 등 기존 체육시설 재구조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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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즈'가 쏘아 올린 공은 인천에도 수많은 별들의 발자취를 남겼다. 인천 프로야구 40년을 통틀어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뽑았다. 이른바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다. 12명의 올스타를 선정한 설문조사는 세대별로 추린 인천 야구인 4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인천일보는 '구도 인천' 2회부터 4회까지 매주 4명씩 인천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냈던 전설들을 소환한다. 인천 야구팬이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법한 '드림팀'이다. 그리고 & [구도 인천] 슈퍼스타 등장부터 랜더스까지…눈물·환희 뒤섞인 '굴곡의 세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2년 7월17일, 인천공설운동장(숭의종합운동장·도원구장)에서 프로야구 첫 경기가 열렸다. 그해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야구장 보수 공사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전기리그 홈 경기를 춘천에서 치렀다. 인천시민 앞에 첫선을 보인 경기 상대는 서울 연고 MBC 청룡.결과는 4대 10으로 대패였다. 삼미 슈퍼스타즈 후기리그 성적은 0승6패가 됐다. '구도'라는 자부심을 가진 관중들에게 낯선 야구였다. 그때부터 인천 프로야구단에는 반복되는 꼴찌와 구단 매각이라는 비운이 계속됐다. 40년 세월은 야속 [구도 인천] 100년 전 웃터골의 열기, 100년 후 연안부두 함성으로 1982년 프로야구가 첫발을 내디뎠다. '삼미 슈퍼스타즈'로 출발한 인천 프로야구도 40년을 맞았다.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를 거쳐 'SSG 랜더스'에 이른 인천 연고팀은 유난히 부침을 겪었다. '왕조'의 시절도 누렸다. 인천사람들에게 프로야구는 눈물이자, 환희였다.인천은 일찍이 '야구도시'였다. 100여년 전 웃터골은 야구의 성지였고, '한용단'은 울분 [구도 인천] 구도의 영광 이끈 어린 영웅들, 인천야구 '주춧돌로 성장' 야구도시의 뿌리는 학생 야구였다. 일제강점기 경인선 기차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주축을 이뤘던 ‘한용단’ 야구는 시대를 대변했다. 해방 이후 도시 대항 야구와 학생 야구가 전부였던 시절, 인천고와 동산고는 야구의 대명사였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교야구 대회인 청룡기는 1950년대 인천을 떠난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일찌감치 구도는 인천으로 통했고, 인천은 야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였다. '고교야구 왕중왕' 인천고2005년 4월1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인천고와 부산고가 맞붙었다. '한국야구 100 [구도 인천] 구도의 미래 짊어진 새싹들, 마음껏 치고 던질 수 있어야 인천 서화초등학교 야구부원 14명 가운데 졸업은 앞둔 6학년은 9명이다. 초등야구의 고민은 '선수 모집'이다. 정정호(38) 서화초 감독은 “리틀·유소년 야구단 출신까지 피라미드 구조로 몰리니까 중학교 정원은 꽉 차는데, 초등 야구부는 대회 출전이 어려울 정도로 학생이 없다”고 말했다.지난 5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인천지역 중학교로는 26년 만에 입상한 동인천중 야구부원은 42명이다. 중학야구의 고민은 '진학'이다. 송순석(40) 동인천중 감독은 “학년당 10명이 넘는데, 중학야구 팀은 클럽을 포함해 7 [구도 인천] 구도의 산증인들…채병용 코치·배수현 치어리더 오르는 일이 고되지 않을 리가 없다. 높은 위치에 서면 그만큼 책임감도 뒤따른다. 2001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통산 451경기에 등판한 채병용(41)은 1336이닝 동안 마운드에 올랐다. 치어리더 배수현(39)은 20년간, 그러니까 인천 프로야구 역사에서 절반의 시간 동안 응원 단상에 올랐다. 전천후 보직을 자처한 채병용에게 야구는 '생존'이었고, 야구장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배수현에게 야구는 '청춘'이었다.'구도 인천' 9회 연재를 마치고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야구에서 [구도 인천] 구도의 기록자들…김노천 사진가·김은식 작가 야구를 흔히 '기록의 스포츠'라고 한다. 1년에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공 하나하나가 쌓여 순위가 줄 세워지고, 각종 비율이 계산된다.숫자가 기록의 전부는 아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20권 가까운 야구 서적을 펴낸 작가 김은식(50)이 야구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돌핀스 유민'이 가진 추억 때문이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천 프로야구 전속 사진가로 활동한 김노천(57)에게 매일 천 번 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 야구장은 '평생직장'이었다.추억을 써내려간 김은식의 문장과 [구도 인천] 김광현 이전, 인천 마운드 지배했던 '원조 왼손 에이스' 퍼펙트 게임. 야구에서 투수가 9회까지 모든 타자를 아웃시키며 끝내는 경기다. 안타와 사사구는 물론 실책으로도 타자가 1루에 나가면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다. 퍼펙트 게임의 희소성은 숫자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프로야구 40년 동안 투수 한 명이 안타와 점수를 내주지 않는 '노히트 노런'은 열네 차례 나왔지만, 퍼펙트 게임은 한 번도 없었다.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실업야구 리그에서 최초의 퍼펙트 게임을 이룬 투수가 있었다. 동산고 출신으로 1950년대 '구도 인천'의 좌완 에이스로 활약했던 고순선(83)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