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우리말 번역판으로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3학년때인 것으로 기억된다. “헤밍웨이야 말로 진정한 작가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우리 시대의 작가가 쓴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윌리엄 포크너)라는 당대의 저명한 작가의 찬사가 책 뒷표지에 적혀있었고 용문식 영어선생님도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중편소설이라는 추천 말씀이 있었지만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문장이 사실주의적이고 명료한 명작이라지만 산티아고라는 늙은 어부가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나 헤밍웨이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자전적 소설 <무기여 잘있거라>를 읽었던 고등학교 때였다. 1차대전에 참전했던 주인공 프레데릭 헨리가 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당해 후송병원에서 만난 미모의 간호사 캐더린과 스위스로 탈출하는 장면은 전쟁과 사랑이 극적으로 교차되는 감동이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탈출 후 열정의 나날을 함께 보내다가 캐더린이 분만 과정에서 세상을 떠나자 “비나리는 거리를 혼자서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는 비통하고 간결한 마지막 문장이 심금을 울렸던 기억이 새롭다.
▶헤밍웨이의 출세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주인공 제이크 반스의 <잃어버린 세대>다운 방황과 감동을 통해서 공감되는 대목도 많았다. 특히 헤밍웨이가 쓴 대표적 장편으로 꼽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통해 1차대전에 참전하고 스페인 내전에는 종군기자로 현지에서 보고 겪은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주인공 로버트 조단의 운명적 종말을 그려낸 것은 압권이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헤밍웨이의 작품을 사전을 찾아가며 원서로 읽으면서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소설 제목을 성경 구절에서 따왔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인 것도 평이한 문체로 된 글을 수 백 번 고쳐 쓰며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모두 읽고 단편과 서한집까지 찾아 읽으면서 평생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사냥과 낚시 그리고 투우를 즐기며 보헤미언적인 삶을 살다가 62세가 되기 직전 아이다호 주의 산골 자택에서 자살한 이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젊은 시절을 지내던 파리의 거처는 물론 오래 머물던 쿠바 하바나의 저택과 단골 술집 '엘 플로리디타'를 찾아가서 헤밍웨이 칵테일을 마셔 보기도 했다.
▶지난달 뉴욕 타임스는 헤밍웨이가 그의 단골 술집에 맡긴 상자에 들어있던 미공개 단편소설과 수백장의 사진 그리고 메모 등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기 전에 썼던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지만 공포에서 벗어나니 편안함을 느낀다”는 메모가 61세에 자살한 헤밍웨이의 61주기가 되는 날에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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