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해튼 계획의 결과물로 길이 3m, 직경 71㎝, 무게 4t의 원통형 원자 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만들어졌다. 리틀 보이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별명으로 이름과는 달리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폭탄의 폭발력은 약 15kt 수준인데, 이는 폭약으로 널리 알려진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 일명 TNT 1.5만t의 위력을 의미한다. 리틀 보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로 이후 핵무기 위력의 기준이 되었다.
1945년 7월 미국, 영국, 중국의 대표가 독일 포츠담에 모여 일본의 항복 조건과 점령지 처리에 관해 발표한 포츠담 선언을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자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 폭탄의 투하를 결정하였다. 첫번째 목표지는 일본에서 인구수가 8번째로 많고, 전쟁 막바지까지 폭격을 받지 않았으며, 군수 시설이 풍부한 히로시마였다. 천년 고도 교토도 투하 후보지로 고려되었으나 일본을 넘어 인류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문화재가 많다는 이유로 막판에 제외되었다.
같은 해 8월6일 일본은 물론 세계 역사를 바꾼 운명의 그날, 북마리아나 제도의 티니언 섬에서 3대의 폭격기가 날아올랐다. 1대는 폭발 장면을 촬영하고 다른 1대는 폭발력을 계측 및 분석하며, 나머지 1대가 원자 폭탄을 실제로 투하하는 임무를 맡았다. 실험용이 아닌 최초의 실전 투입인데다가 폭탄이 운송 도중 터질 것을 우려하여 히로시마로 가는 비행 중에 원자 폭탄을 조립하기로 하였다. 미국 해군의 윌리엄 파슨스 대령은 소음과 진동이 심한 폭격기 에놀라 게 이 안에서 긴박하게 부품을 조립하여 원자 폭탄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였다.
오전 8시15분15초 마침내 9300m 상공에서 폭탄창이 열렸고, 자유 낙하하던 리틀 보이는 지상 570m 지점에서 폭발하였다. 그 순간 태양보다 밝은 빛이 히로시마 일대를 뒤덮었으며, 폭발 중심부의 온도는 4000℃에 이르렀다. 쇳물을 만드는 용광로 안의 온도가 1500℃ 정도이니 도시 전체가 불의 지옥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뒤이어 빛보다 느린 소리가 지상으로 전달되었는데, 고막이 찢어지고 하늘을 뒤흔들 정도의 굉음이었다.
2000℃의 뜨거운 열풍이 초당 수백m의 속도로 도심을 덮쳤고, 무려 7만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준 태풍 '루사'나 '매미'보다 훨씬 빠른 바람이 휘몰아치고 거기다 철을 녹일 정도로 뜨거운 열기까지 더해지니 폭탄의 위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즉사한 것은 물론 건물들이 무너지는 등 도심은 반경 1.6㎞까지 초토화되었으며, 히로시마 상공에는 한동안 검은 버섯구름만 남아 있었다.
원자 폭탄의 상징과도 같은 버섯구름은 온도 차이로 인해 형성된 압력이 공기를 순환시켜 만든 유체역학적 결과물이다. 폭탄이 폭발하면 주변 산소는 모두 연소되고 폭심지의 매우 높은 압력이 고온의 공기 덩어리를 밀어내며 순간적으로 진공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기체는 온도가 높을수록 밀도가 낮기 때문에 마치 끓는 물속의 공기 방울처럼 위로 상승한다. 이때 상승 흐름의 중심으로 연기와 폭발 잔해물이 빨려 들어가며 기둥 모양이 형성되고 가장자리에서는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상승한 연기는 어느 정도 높이에 도달하면 온도가 식어 주위 공기와 비슷해지고 반구 모양으로 서서히 퍼져 버섯 모양을 그린다. 이러한 공기 순환은 진공이 사라지고 근처 온도가 비슷해져서 밀도 차이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