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기사를 쓰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기획 기사를 준비하며 2년 가까이 인터뷰를 이어온 취재원이었다. 그는 본인 얘기를 기사화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대로 초고를 덮었다. 마감이 끝난 저녁과 휴일 틈틈이 정리했던 기록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기획안부터 다시 써야 했다.
취재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뒤따른다. 발제부터 보도까지 밑그림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예기치 못한 변수에 맞닥뜨리고, 그때마다 기사는 널뛰기를 거듭한다. 일간지 기자들에겐 으레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때로는 운 좋게도 머릿속에 없던 정보를 접하기도 한다. 흔히 특종이라고 부르는, 그런 행운을 마주한 기억은 떠올리기 어렵다. 변수는 대부분 불운을 향했다.
따지고 보면 불확실성과의 싸움을 반복해야 하는 직업이다. 애초에 불확실성을 품은 기사는 성립하지 않는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검증을 거듭한다. 이른바 '팩트 체크'를 한 기사라도 상대가 '악의적 오보'라고 주장하면 다툼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럴 때 흔히 직면하는 언론중재 답변서는 기사와 다른 차원의 글이다. 열에 아홉은 환대를 받는 기사가 아니기에 관계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새로 만나는 사람이 등돌리는 이보다 많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일인데, 그마저도 제한됐을 때 헤쳐 나갈 슬기를 아직 갖추지 못했다. 똑같은 현장에서 취재를 하더라도 똑같을 수 없는 결과물로 평가받는 일인데, 거기서도 배제된다면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운세는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슬기롭게'였다. 이토록 많은 불확실성 앞에서 가능한 주문일까.
/이순민 탐사보도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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