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시계 10년 만에 다시 돌아간다

~2021년 봄
재개발 조합설립 인가 후
강산이 변하고서야
들려온 시공사 선정 소식

일꾼교회 목사인 김도진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지키려
또 한 번 진정서 꺼냈고

재개발 조합장 전기원은
반년 만에 “현대건설 모셨다”
정기총회 준비로 바쁘고

40년 미용실 운영 박희순은
정기총회 안내문에 절레절레
“몇 번 속아서 과연 될까 싶어”

“리모델링을 뭐하러 해요?”

공인중개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2019년 가을, 김도진이 화수동 부동산을 찾아갔을 때였다. 오랜 꿈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대화가 꼬리를 물었다. “거기 재개발하잖아요.” 잊고 있던 세 글자, '재개발'이 공인중개사 입밖으로 나왔다.

“10년 전에도 똑같은 진정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지금 또다시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쓰는 저희들의 마음은 답답하고 자괴감마저 듭니다.” 일꾼교회로 다급하게 돌아온 김도진은 동구에 보내는 진정서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 인천 동구 화도고개에서 내려다본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 화도진공원 9배에 이르는 18만998㎡ 면적이다. 2009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지지부진했던 재개발 사업은 2019년 시공사 선정을 계기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인천 동구 화도고개에서 내려다본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 화도진공원 9배에 이르는 18만998㎡ 면적이다. 2009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지지부진했던 재개발 사업은 2019년 시공사 선정을 계기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10년 만에 다시 쓴 진정서

화도진공원 아래 쌍우물을 마주보고 있는 화수동 183번지. 지금의 일꾼교회에 터를 잡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줄임말로 인천산선의 역사는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교육이 이뤄진 인천산선은 민주노조운동의 거점이자, 1970년대 '똥물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안식처였다.

일꾼교회 목사로 인천산선 8대 총무를 맡은 김도진에게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기념관' 건립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이었다. 교회 건물에 기념관을 만들려면 2층에서 운영 중인 동구 푸드뱅크 사무실을 옮겨야 했다. 임대 공간을 알아보려고 부동산을 다녀온 김도진은 서랍을 열어 진정서부터 꺼냈다. 진정서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역사적 가치를 존중해서 재개발에서 제외해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날짜는 2009년 7월27일, 재개발 조합 설립 직전이었다. 그의 책상에는 임대차 계약서 대신 10년의 시차를 두고도 내용이 바뀌지 않은 진정서 2부가 놓였다.

멈춰 있던 재개발 시계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화수화평 구역 재개발 조합은 그해 6월30일 시공사 선정 총회를 열었다. 시공사는 현대건설, 한 달 뒤 국토교통부 '시공능력 평가'에서 2위에 오른 업체였다. 재개발 과정에서 시공사 선정은 사업성을 보여주는 가늠자다.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구역일수록 건설사 수주전이 치열하다. 이른바 '1군 브랜드' 참여는 재개발 수익이 날 만한 곳이라는 의미다.

조합장을 맡은 지 반년 만에 시공사 선정을 이끌며 사업을 본궤도에 올린 전기원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현대건설이 왔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제가 모셔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구역은 면적이 커서 조그만 건설회사는 사업을 할 수가 없어요.” 화수화평 재개발 시공사 선정은 2009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지 꼬박 10년 만이었다.

▲“명품 아파트 공급” 불붙은 재개발

화수화평에 봄이 찾아온 지난해 3월, 김도진은 재개발 조합과의 면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외지인 소유주가 많다는데 과연 재개발이 주거환경 개선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어요. 그래도 찬성 주민들과 충돌하고 싶진 않으니까 재개발 자체를 반대하지 않지만 가까운 쌍우물과 함께 보존하는 방안을 요구했죠.”

앞서 두 차례 면담은 평행선을 달렸다. 첫 만남은 그로부터 석 달 전인 2020년 12월22일이었다. 그날 오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보존대책협의회'가 발족했다. 협의회에 참여한 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도 면담에 동석했다. “인천산선 건물을 존치하는 방향으로 설계 변경을 검토해 달라고 했어요.” 한 달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건축사무소 관계자가 내놓은 답변은 “사업성이 떨어진다”였다고 민운기는 떠올렸다.

다시 불붙은 재개발은 거침없었다. 시공사가 선정된 뒤부터 물밑에선 '화수화평 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 변경 절차가 이뤄졌다. 화도진공원 9배에 이르는 18만998㎡ 면적에 3200세대 아파트를 건설하는 계획이었다.

“전염병 확산 방지책 일환으로 불편한 장소에서 개최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2020년 10월13일 재개발 구역에서 살짝 벗어난 화평동 황인의원 주차장에 천막이 설치됐다. 간이의자는 드문드문 놓였다. “동인천 랜드마크 명품 아파트를 조합원 여러분께 공급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건축심의와 사업시행 인가 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정비계획 변경안을 알리는 주민설명회에서 마스크를 쓴 조합장 전기원이 말했다.

일주일 뒤 정비계획 변경안은 동구의회 복지환경도시위원회로 넘어갔다. 의견 청취 안건을 심의하는 자리에서 동구 도시정비과 공무원은 “올해 정비계획을 결정한 후 2021년 사업시행 인가, 2022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거쳐 이주를 시작하고 2023년 착공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안건은 원안 가결됐다.

 

▲찬성과 반대, 갈림길에 선 동네

텔레비전 소음 사이로 가위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거울 3개가 비추는 미용실 안으로 노을빛이 스며들었다. “단독주택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찬성 도장을 안 찍었어. 빌라들은 다 찬성했고.” 지난해 5월 마지막 주 저녁, 검정 앞치마를 두른 박희순이 맞은편 주택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3층짜리 건물은 박희순 가족들의 공간이다. 1층은 미용실, 위층에는 부부와 자녀가 산다. 결혼한 뒤로 박희순은 40여년 동안 화수동을 떠난 적이 없다. “파마가 3000원”이었던 시절 “기와집 바깥채를 털어서 시작”한 미용실은 평생직장이 됐다. 남편 이보형은 4대째 같은 자리에서 살아온 화수동 토박이다.

미용실을 중심으로 화수동 길은 여섯 갈래로 나뉜다. 길목 한가운데, 미용실 문 앞에는 우물이 있다. 동구가 세운 '화수동 쌍우물' 팻말에는 “19세기 말 화도진지에 주둔하던 병사와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유서 깊은 곳”이라고 적혀 있다.

“처음에는 동네를 위해서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 속아서 과연 될까 싶어. 참, 조합에서 뭐가 왔더라고.” 2층에 올라갔던 박희순이 재개발 조합 정기총회 안내문을 들고 내려왔다. 때마침 남편 이보형이 미용실로 들어왔다. 안내문을 쳐다보던 그가 말했다. “또 재개발을 한다고? 천만의 말씀이야.”

/이순민·이창욱·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m

 


 

#어떻게 취재했나

21개월간의 현장기록…심층인터뷰·자료 바탕 생생하게 재구성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연재 기사는 인천 동구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을 1년 9개월 동안 취재한 결과물이다. 조합설립 인가 이후 10년째 지지부진하다가 2019년 시공사 선정을 계기로 재개발에 속도가 붙은 화수화평 구역을 지난해 2월부터 현장 취재했다. 재개발 절차 한복판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동네 변화상을 6회에 걸쳐 풀어놓는다.

인터뷰 대상자는 직접 섭외했다. 지난해 2월19일 첫 번째 인터뷰를 시작으로 계절마다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 주민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재개발 진행 과정에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 문제로 이슈 한가운데 있었던 김도진 일꾼교회 목사도 단식농성 이전인 지난해 3월부터 만나 이달까지 9차례 대면 인터뷰했다. 주민뿐 아니라 재개발 조합 관계자, 인천시·동구 공무원, 인천시의원·동구의원, 시민단체 활동가 등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에 나오는 대부분의 장면은 취재 과정에서 직접 목격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집회·기자회견 등은 발생 당시 현장 취재했다. 취재 착수 이전의 일이나 현장에 없었던 상황은 회의록·영상·사진 등을 참고했고, 취재원 설명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재개발 조합 정기총회·대의원간담회 등 내부 자료는 취재 과정에서 원본을 입수했다. ‘화수화평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던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은 인천시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확보했다. 2008년 화수화평 정비구역 지정 이후 인천시·인천시의회·동구 행정자료도 수집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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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희망·절망 뒤섞인 원도심 재개발 '21개월간의 비망록' 부동산 바람이 원도심 마을에 불어닥쳤다. 동인천역과 공업지대 사이에 주택과 빌라가 밀집한 인천 동구 화수화평 구역. 지지부진했던 3000여 세대 규모의 재개발 사업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한적했던 동네는 찬반으로 갈렸다. 누군가는 사업을 벌였고, 주민들은 체감하지 못했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반신반의하며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화수화평 구역은 절차상 10여년째 '조합설립' 단계다. 재개발이 멈춰 선 동안 화수화평에는 지역주택조합 얘기가 오갔고, 뉴스테이가 추진됐다. 웬만한 개발 바람은 모두 스쳐갔다. 그때마다 마을은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화수화평 아카이브-인천도시산업선교회 화수시장에서 화도고개를 넘으면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살구색 건물이 나타난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로 불렸고, 지금은 ‘일꾼교회’라는 팻말이 붙은 공간이다.인천산선은 1961년 초가집에서 ‘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간판을 달고 출발했다. 미국에서 온 조지 오글(한국 이름 오명걸·1929∼2020) 목사가 정착하면서다. ‘약한 것을 강하게’라는 구호를 내건 산업선교는 공장으로 향했다. 노동교육은 1970년대 동일방직·삼원섬유·반도상사 등의 민주노조운동으로 뻗어나갔다. 1980년대 신용협동조합, 무료 진료,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② 화도고개를 따라 오르내리는 <지난 줄거리>김도진 일꾼교회 목사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기념관 리모델링을 하려고 부동산에 갔다가 재개발 소식을 접했다. 정비구역 지정 10년 만에 시공사를 선정한 조합은 사업에 속도를 붙였다. 동네 한복판에서 40여년 세월을 버틴 미용실에도 찬반으로 나뉜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동인천역에서 화평동 세숫대야냉면 거리를 따라가면 오른쪽에 골목이 나온다. 철길과 찻길이 뚫리기 전부터 사람들이 오갔다는 골목 끝에선 만석부두부터 배다리까지 뻗은 '화도진로' 맞은편으로 고갯길이 이어진다. 화도고개로 오르는 '화도로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화수화평 아카이브-황해도평산소놀음굿 보존회 화도고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파란 지붕에 하얀 벽돌로 지어진 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 위로 솟아 있는 깃발에는 '황해도평산소놀음굿 보존회(사진)'라고 쓰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0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 보유자 고 이선비(1934∼2019) 만신이 생전 머물렀던 곳이다.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이선비 만신은 피난을 내려와 뱃길로 목포에 닿았다. 광주·보성·벌교·고흥 등지를 전전하다가 스물한 살 때 화수동에 정착했다. 당시 화수동에는 피난민이 많이 유입돼 주거지를 형성했다. 분단됐지만 얼마 안 있으면 고향에 갈 수 있겠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③ 해는 무심하게 뜨고 지고 <지난 줄거리>재개발이 본궤도에 오른 화수화평 구역에선 빌라 매매 가격이 급등했다. 정비계획 변경안을 심의하는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 일정이 잡히면서 기자회견과 집회도 잇따랐다. 지난해 6월 중순 재개발 조합 정기총회에선 교회와의 협상이 화두로 떠올랐다. “종교단체가 알박기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어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다. “조합은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하고자 하니 여러분들도 도와주세요. 필요하면 시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종교시설 협상단을 구성하는 안건을 통과시키며 사회자는 이렇게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화수화평 아카이브-인천 공설목욕탕 화도로에서 화수시장으로 내려가는 샛길에 접어들면 가운데가 반원형으로 볼록 나온 건물을 마주할 수 있다. 하얀 타일로 덮인 입구에는 '화도선교관(사진)'이라는 파란 팻말이 붙었다. 일제강점기 목욕탕 가운데 인천에 유일하게 남은 곳이자, 인천부(지금의 인천시)가 지은 최초의 '인천부립 공설욕장'이다.공설목욕탕은 1933년 1월 문을 열었다. 당시 화수동은 한국인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개항장을 중심으로 목욕탕이 들어섰지만 일본인들 차지였다. 일본인 사업가 노구치(野口文一)는 한국인이 이용하는 목욕탕을 건립하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④ 옛것과 새것 사이 <지난 줄거리>화수화평 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이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보류되자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 현 일꾼교회)를 비난하는 현수막 여론전과 집회가 벌어졌다. 인천산선 존치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30일간 이어졌지만, 인천시는 지난해 7월 정비계획 변경 고시를 했다. 연탄난로 위에 은빛 주전자가 놓였다. 지난해 11월 중순, 가을과 겨울 경계에서 쌍우물 옆 미용실은 월동 준비를 마쳤다. “시간이 걸릴수록 비용이 늘어날 텐데. 화도진공원이 문화재라서 복잡한가봐. 검단신도시도 왕릉 아파트 때문에 계속 뉴스에 나오잖아.” 미용실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화수화평 아카이브-도쿄시바우라 사택 화수동 쌍우물에서 화수사거리 방향 골목으로 걸어가면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 북쪽 끄트머리 공영주차장 옆으로 길쭉한 단층 건물들이 나온다. 세모난 지붕 아래 길가로 현관을 낸 주택, 그리고 마주보고 있는 어린이집이다. 여기에는 도쿄시바우라(도시바) 사택(사진)으로 출발한 80년 역사가 담겨 있다.도쿄시바우라 인천공장은 전기 용품을 만들던 곳으로 1939년 화수동 매립지에 들어섰다. 태평양전쟁 시기였던 1944년 군수회사로 지정됐고, 해방 이후 이천전기가 인수했다가 일진전기로 바뀌었다.도쿄시바우라 사택은 동구 화수동과 만석동에 위치했다.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⑤ 갈등 그리고 갈등 <지난 줄거리>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한 화수화평 재개발 사업은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진통을 겪었다. 외지인이 차지한 빌라 세입자 고민이 깊어지던 지난 겨울,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 현 일꾼교회) 범시민대책위원회와 재개발 조합은 문화재 심의를 앞두고 각각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심의 결과는 '부결'이었다. 재개발 사업을 시시각각 파악하기 어려운,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한 주민들은 현수막으로 진행 상황을 보며 이웃 사이에 떠도는 소문으로 정보를 접한다. 특히 현수막은 재개발 구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화수화평 아카이브-인천공작창 사택 화도진중학교 건너편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골목 초입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지는 역사를 품은 건물이 있다. 울창한 나무와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 안쪽으로 기다란 지붕이 보이는 단층 주택(사진)이다. '철도청 관사'라는 말이 전해졌던 이 집은 인천공작창, 그 이전에는 일본차량주식회사 인천공장 간부사택으로 쓰였다.일본차량주식회사 인천공장은 1937년 동구 화수동과 송현동, 지금의 동부아파트·미륭아파트 자리에 건설됐다. 일제강점기 군수공장으로 화물차·객차 등을 비롯해 군용열차 부품을 제작하던 곳이다. 해방 이후 조선차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⑥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지난 줄거리>설날을 맞은 동네는 고요했지만 재개발에 불안감을 느낀 주민들이 이사 갈 집을 알아본다는 소식이 들렸다. 화수화평 재개발은 조합장 선거 총회를 앞두고 내분을 겪었다. 조합과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 현 일꾼교회)가 참여하고 인천시가 중재하는 3자 협의체는 지방선거 직전 합의서를 체결했다. 빨간 카펫이 깔린 무대 위에 색동저고리를 입은 어린이들이 앉았다. “어이.” 고함 소리와 함께 장구채를 머리 위로 올리는 송현유치원 풍물단의 준비 동작이 뒤따랐다. 장단에 맞춰 고사리손이 장구 옆에서 춤을 췄다. “아이들이 해마다 [화수화평의 봄여름가을겨울] 화수화평 아카이브-화수동 쌍우물 화수동 107번지 길가에 있는 쌍우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마을 화합에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화도진도'를 보면 괭이부리(猫島) 방향으로 둔덕 아래쪽에 우물 표시가 있고 집에 댓 채 그려져 있다. 이 우물은 구전에 의하면 19세기 말 화도진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과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당초 두 개의 우물이 있었지만 1960년대 초 한 개의 우물이 메워지고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현재 나머지 한 개 우물만 남았다. 이를 '화수동 쌍우물'이라고 부른다.주민들은 지역 유물인 재개발 앞둔 '화수화평 특별전' 열린다 재개발을 앞둔 인천 원도심인 화수동·화평동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개발 과정에서 철거로 사라질 수 있는 산업유산이나 민속자료 등을 포함한 지역사를 연구하는 작업도 병행된다.인천시립박물관은 동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과 공동으로 오는 6월부터 두 달여에 걸쳐 '무네미 넘어 벌말까지, 화수·화평동'을 주제로 기획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이번 특별전이 조명하는 동네는 재개발 절차가 진행 중인 화수화평 구역이다. 전시 주제에서 언급한 '무네미'는 바닷물이 넘어 들어와 '무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