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1883년) 이후 숱한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인천 개항장은 정치·외교·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생생한 한국 근대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렸던 조계지, 각계 고위층이 사교를 위해 모였던 제물포구락부, 시장이 살았던 관사 등 수두룩하다. 인천항과 개항로를 중심으로 한 지금의 중구가 그렇다. 인천시가 국내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 등이 있는 송학동 일대를 '역사산책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다. 이들 흔적 가운데 인천시장이 살던 관사는 어땠을까? 첫 시장 관사는 신흥동에 둥지를 틀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8년에 지어 해방 이후에도 1966년까지 사용됐다. 전체 면적 496.1㎡ 규모. 지하 1층~지상 2층 주택과 창고로 구성됐다. 지하실의 경우 방공호로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1937년 중일 전쟁을 거치며 인천을 병참기지화하는 시대적 상황을 알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시장 관사는 1966년 송학동으로 옮겨져 2001년까지 모두 17명의 인천시장이 거주했다.
이 관사 터엔 1901∼1916년 사이에 지은 일본인 사업가의 2층 별장이 있었다. 건물은 해방 후 서구식 레스토랑과 사교클럽 등으로 쓰였다. 2020년까지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운영되다가 2021년 7월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인천시민애(愛)집'으로 불린다. 지하 1층·지상 1층에 전시실·영상실·휴게공간·야외정원 등의 시설을 갖췄다. 이렇게 본디 용도를 폐기한 시장 관사가 탈바꿈을 거듭해 관심을 모은다.
인천시민애집이 자리를 잡아가자, 인천시가 신흥동 옛 시장 관사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신흥동 일대 고급 주택 단지 형성 배경 등 다양한 이야기와 건물의 역사를 활용한 전시를 꾀한다. 시는 역사적 의미와 일본식 가옥 형태 등 건축적 가치를 인정해 지난 2020년 민간 소유자로부터 관사를 매입한 상태다. 이후 지난해 12월엔 1977년 개축 이전의 모습 재현과 전시 공간 조성을 위해 철거와 정리를 진행하는 등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시는 역사·문화적 가치 보존을 위한 자료 수집과 건물 특성을 고려한 공간별 활용 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내년 2월 쯤이면 모든 공사가 마무리된다고 한다. 보존·복원·철거 등을 거친 완벽한 정비를 통해 인천시 문화재 등록을 고려할 만하다. 신흥동 옛 시장 관사는 그 역사적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관사로서뿐만 아니라 전통 일본식 주택이 한국에 토착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또 하나의 인천지역 복합 역사·문화공간으로 운영되길 기대한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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