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된지 3년 후가 되는 1948년 5월25일 미군 상륙작전 해군 군함(LST)편으로 중국 천진에서 동포들이 인천항에 도착했다. 광복 직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수많은 일본인들은 물론 만주일대에서 거주하던 한국인들의 귀국까지 해군 선편을 제공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력과 배려를 다시 한 번 회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 해군은 천진에서 인천까지 총 25차에 걸쳐 LST를 배정했는데 5차편으로 인천에 도착하여 월미도 수용소에 머물고 있던 귀향인 중에는 봉천에서 교직에 있던 이인수(1911~1990) 선생이 계셨다.
▶당시 인천중학교 교장으로 계시던 분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참된 스승으로 숭앙 받고 있는 길영희(1900~1984) 선생님이셨다. 길 교장은 좋은 선생님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셨는데 만주에서 LST편으로 귀국하는분들 중에는 지식층분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월미도 수용소를 중심으로 수소문을 하고 계셨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봉천에서 교직에 있던 이인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학수 선생님을 통해 인천중학교 교사로 초빙하기에 이른다.
▶이인수 수필집 <흙베개>에는 인천중학교 교장실에서 처음 만났던 두 분 사이의 대화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만주에서 쫓겨나온 피난민으로 월미도 수용소에 있던 나에게 천만 뜻밖에도 인중 교장이 찾는다는 복음(福音) 같은 소리에 교장실로 달려갔다. 길 교장께서는 좋은 선생을 구해 오는 것이 교장의 임무라면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자들이 어서 많이 나와야 한다”고 썼다. 이 같은 길영희 교장의 부름에 따라 인천중학교 국어 교사로 교감직까지 맡게 된 이인수 선생은 실력을 위주로 하고 인간 교육을 사명으로 삼는 길 교장 슬하에서의 7년간 실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필자가 인천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인수 교감은 고개가 약간 옆으로 기울었다고 '6시5분전'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었지만 항상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표정에 정감을 느끼는 스승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인중 3학년반을 담임하시면서 신입생들을 가르치시지는 않아서 직접 배울 기회는 없었지만 선배들을 통해서 길 교장을 성실히 보필하면서 인간 교육에 치중하셨던 보기 드문 교육자로 각인되었다.
▶지난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영원한 스승 이인수 선생께 드리는 감사패 증정식이 있었다. 지난 반 세기 동안 길영희 선생의 교육정신을 승화시켜온 심재갑 고문은 이인수 선생이야 말로 길 교장의 교육이념을 일생 동안 간직하고 실천했던 분이라고 했다. 이날 모임은 따님 부자 이인수 선생님의 여섯 자매가 아버님의 인중 시절 제자들을 초청함으로서 이루어진 뜻있는 행사였다. 세태가 바뀌어도 영원히 간직해야 할 스승에 대한 흠모 정신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귀중한 모임이었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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