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독립신문 “강화부·인천항·부산항 소학교 설립”
강화부 소학교 계승 강화초교와 같은 시대 탄생 확인돼
1933년 일본인 발행 '인천부사' 중 “1907년 개교” 명시
의심없이 학교 역사 삼아…'창영' 교명도 일본인 멋대로

“인천부공립소학교 교원 변영대(卞榮大)에게 2급봉을 주었다.”(승정원일기 고종 32년 1895년 12월8일(음) 기사)
인천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는 1896년 강화초교, 1899년 부평초교로 인식된다. 각 학교 누리집과 이를 소개한 여러 안내서 등이 설명한다.
강화초교와 같은 때 설립된 학교가 있다. 바로 인천 동구 '창영초등학교'이다.
하지만 창영초교의 개교일은 강화초교보다 11년 늦은 1907년이다. 이 역사적 오류를 100년 넘게 바로 잡지 못한 이유는 무얼까.
11일 승정원일기를 비롯해 각 칙령, 독립신문, 황성신문 등에 따르면 인천 최초로 소학교(현 초등학교)가 세워진 때는 1896년까지 오른다.
1895년 7월19일 공포된 '소학교령(칙령145호)'에는 '인천부공립소학교' 설치가 발표됐고, 이듬해 9월22일자 독립신문에는 “학부령으로 지방공립소학교를 설치한 곳은 강화부, 인천항, 부산항 등이라”고 게재됐다. 이에 인천부공립소학교에는 1895년 10월 한성사범학교 1회 속성과를 졸업한 변영대가 교원으로 부임한다.
창영초교 역사 오류는 1933년 일본인이 발행한 <인천부사(1883∼1933년)> 때문이다.
인천부사에는 창영초교에 대해 “1907년 4월1일 관립일어학교 교실을 임시교실로 개교하고, 부윤, 면, 동장에 알려 학생을 모집했으나, 입학생은 3명이었으며, 5월18일이 돼서야 6명의 학생이 입학했다”라고 명시했다.
이를 의심없이 창영초교 역사로 삼은 만큼 인천지역 공립초등교육기관 시초(강화를 제외)가 1899년 개교한 부평소학교로 인식된 것이다.
이어 1907년 대한제국 외교권이 박탈된 후 반포된 보통학교령에 따라 소학교를 계승했다.
강화초교 역사를 빗대면 창영초교 역시 1896년 2월 개교, 1907년 소학교 개명, 1933년 교명 변경 등으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창영'이라는 학교명이다. 인천이란 지명이 일본인 손에 '창영'으로 바뀌었지만, 바로잡지 못했다.
손장원 재능대 교수는 “인천부공립소학교는 강화초교와 같이 1896년 개교한 역사적 사실이 맞다. 이를 계승한 곳이 창영초교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설명했고,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유물부장 역시 “같은 시기 공립소학교가 설치된 타 지역은 이를 계승했지만, 창영초교만 유독 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