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코로나의 영향인지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지인들의 부고 소식이 많았다. 늘 그 자리에 계실 것 같던 분들의 존재가 하룻밤 사이 사라지고 나니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그 사실을 잊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죽음의 문턱에 가보고서야, 혹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야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비로소 절감하게 된다. 장례식장에 찾아가면서 예전에는 인지 못 했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장례식장은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형병원 캠퍼스의 구석진 공간 또는 지하, 쓰레기 등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간과 가까운 곳에 있기도 했다. 어떤 병원은 지하 주차장 속 구석진 곳에 장례식장 입구가 있었다. 꼭 일부러 숨긴 것처럼 찾기가 참 어려웠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죽음 관련 장소들을 일상의 공간과 분리하고 있다. 장례식장, 추모공간, 납골당 등이 근처에 지어진다는 소식이 들리면 바로 빨간 글씨의 현수막이 내걸린다. 우리 동네, 우리 아이 학교 근처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혐오시설의 대표적인 건물이 죽음과 관련된 시설들이다. 하지만 변치 않는 진실은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탄생이 나의 권한이 아니었듯, 죽음 역시도 나의 소관이 아니다. 그리고, 먼 미래에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타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찾아올 수 있는 일이 바로 죽음이다.
프랑스 파리에는 페르라세즈 공원묘지(Cimetiere du Pere-Lachaise)가 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동묘지는 쇼팽, 프루스트, 발자크,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과 같은 유명인이 잠들어 있어 이들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많지만,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주민들이 산책을 위해서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동묘지 사이에서의 산책이라니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는 삶과 죽음의 영역을 별개 공간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은 죽음과 추모의 공간을 일상 속에 옮겨 놓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산책과 휴식을 취한다. 나라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경향에 대한 문화적 차이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한 시선을 주고, 관련 공간들이 일상 속으로 녹아들 수 있게 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 등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니 일견 강압적인 말 같지만 의미를 알면 그 반대이다. 우리는 죽음을 바라볼 때 삶의 의미와 기쁨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을 알게 되며, 삶의 거품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 나의 삶의 끝에 대해 인지할 때, 나 자신에게 더욱 충실해지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살피며, 비로소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경험은 삶의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도시 공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나의 삶과 나와 주변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소들이 일상의 공간 속에 의미 있게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백현아 건축사사무소 이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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