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진 후 어둠이 몰려오면, 오사카 나가이 식물원에는 잠들어있던 식물이 살아나는 듯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숨소리와 같은 음악과 함께 숨을 쉬는 듯한 조명이 식물원 입구부터 방문객을 반긴다. 호숫가에는 생명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작품이 함께하며 깜깜한 밤, 사람들을 생명과 환경의 주제로 이끈다. 예술과 과학, 각종 기술을 융합하여 그들만의 언어를 선보이는 팀랩(Teamlab)이 식물원의 밤에 생동감을 부여한 전시다. 익숙한 모든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그룹은 생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최적의 장소로 식물원의 겨울 밤을 선택했다. 어둠으로 정리된 세상 안에서 그들의 소통방식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들은 시각의 강약을 조절하며 청각과 후각 등 다른 감각에 집중하게 만드는 밤의 매력을 그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색은 더하면 검은색이 되고 빛은 더할수록 하얀색이 되었다. 어렸을 적 교과서에서 만난 빛의 3원색은 더할수록 사라지는, 혹은 점차 없어지는 이상한 개념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도시의 밤거리를 거니는 어른이 된 지금, 수많은 빛이 더해진 과한 조명이야말로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임을 깨닫는다. 오히려 낮보다 강한 빛으로 너무 많은 볼거리를 강조한다. 우리는 밤의 빛이 아름다운 이유가 어둠이 있기 때문임을 잊곤 한다. 좋은 야경은 빛과 어둠 그 사이, 적절한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밤에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경험은 매우 근대적인 개념이다. 근대 야간 경관을 연구한 권영란 연구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개인이 소지하는 불빛이 아닌 가로 전등이 설치된 것은 18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복궁에 설치되어 특정 계층만 감상할 수 있었던 밤의 불빛은 이후 1900년 종로 보신각에 가로등이 설치되면서 궁밖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야간경관으로 여겨지는데, 두려운 미지의 세계였던 어둠에서 조명과 함께 밤을 즐길 수 있는 문화 또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야앵(夜櫻)이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밤에 벚꽃을 구경하며 논다는 뜻으로, 주로 1900년대 초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벚꽃과 사람들을 구경하였던 문화를 일컫는다. 밤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곧,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시공간적 일상의 무대가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조명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밤의 시간은 곧 근대로 접어들며 탄생한 새로운 도시 문화에 속했다.
2022년 인천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야간관광 특화도시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되었다. 앞으로 약 3년간 밤을 수놓는 다양한 야간경관 사업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근대로 접어든 대표적 문화인 야간 경관을 즐기는 무대로 인천이 그 어떤 도시보다 적합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이제 야경은 저녁 시간대에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도시의 경쟁력으로까지 이어졌다.
빛과 어둠은 깜깜한 밤을 수놓는 언어와도 같다. 야경이 다른 경관과 차이를 갖는 이유는 무언가를 강조하는 조명보다 그 빛을 도드라지게 도와주는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창경궁 야앵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던 이유는 아마도 어둠 속에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던 적절한 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빛과 어둠의 조화로운 언어로 수놓아진 인천 야경을 상상하며, 앞으로 3년간 펼쳐질 다양한 야경 특화 사업에 대한 기대해 본다.
/유영이 서울대 건축도시이론연구실·<다이얼로그: 전시와 도시 사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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