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정점에 달했던 1960년대의 세계적인 뉴스 메이커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었다. 나토를 탈퇴하고 핵 보유국이 된 프랑스는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며 독자적인 외교·군사 정책을 펼쳐 나갔다. 1963년 독·불 우호협력조약을 통해 독일과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를 만들고 독일과 함께 유럽통합의 꿈을 실현해 나간 것도 드골이었다.
▶당시 프랑스를 위시하여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총 6개국으로 1957년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EC)에 영국이 가입 신청을 했지만 프랑스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되었다. EEC 헌장은 신규 회원국 가입은 기존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동서 냉전 상황에서 서방국가들간의 단합이 긴요했던 시기에 프랑스의 나토 탈퇴와 영국의 EEC 가입 봉쇄는 국제뉴스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1967년 조선일보 외신부(국제부)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있던 필자는 시내판 마감시간이 박두한 시점에서 해외통신사들이 쏟아내는 뉴스에서 '드골 대통령, 영국의 EEC 가입 또다시 거부'라는 제목의 긴급뉴스를 신속하게 번역해서 편집부에 넘겼다. 경쟁지에서는 그 뉴스를 싣지 못해서 그날 아침 수도권으로 배달되는 신문에는 드골의 영국 가입 2차 거부권 행사가 1면 중간톱이 되어 필자의 특종 기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영국의 EEC 가입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가입은 1973년에 실현되었다. 프랑스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필자는 유럽연합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던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취재에 임했다. 영국을 '트로이의 목마'로 지목하며 가입을 거부하던 드골 대통령이 퇴진한 후였고 영국을 가입시켜 프랑스의 잉여 농산물 시장을 확대해 보자는 여론에 프랑스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가입이 확정되었다. 네덜란드 현장에서 영국 가입 기사를 쓰면서 때마침 번역하고 있던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에 나오는 '역사적으로 영국은 유럽의 통합을 저지하는 대외정책을 추구해 왔다'는 구절과 평소 드골 대통령이 '유럽이 미국과 분쟁이 생기면 영국은 분명히 미국편에 설 것'이라는 언급이 점철되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가입한지 46년이 되는 2019년에 드골의 예언대로 28개국으로 확대된 통일 유럽에서 탈퇴를 감행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오늘날 영국은 극심한 경제 불황과 물가 상승 그리고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인 32%만이 유럽 탈퇴를 긍정적으로 보는 대신 56%는 실패로 생각한다. G7 국가 중 유일하게 총생산이 축소되어 스위스식으로 유럽연합과의 준회원국 관계를 시도하고 있지만 냉기류만 흐를 뿐이다. 반세기 이상 영국과 유럽의 관계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국가간의 관계는 신뢰와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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