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이치를 파악하는데 하나가 상수리(象數理)이다. 상수리는 앞일을 미리 보여주는 ‘징조[象]’와 비밀코드를 풀 수 있는 ‘숫자[數]’ 그리고 상∙수를 바탕으로 그것을 해석하는 ‘이치[理]’를 말한다. 즉 세상만사는 각자 고유한 상(象)이 있으며, 그것은 수(數)로 이루어져 있어 상과 수를 알게 되면 이면에 담긴 이치(理)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주역>을 다른 말로 상수학(象數學)이라 한다. 그래서 <주역>을 공부하게 되면 세상 이치의 ‘한소식’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상수(象數)도 알기 어렵지만, 리(理) 또한 만만치 않다. 이치만 터득하면 그야말로 도사급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상수리의 다른 표현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다. 사서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보면, 격물치지는–격(格)은 이를 격, 물(物)은 만물 물, 치(致)는 이를 치, 지(知)는 알 지자로–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사물의 이치를 깊이 궁구하면 완전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사물을 가까이 그리고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사유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대학>에 보면 “사물의 이치를 알아야(格物) 지식에 이르게 되고(致知), 지식에 이른 후에야 뜻을 세워 정성을 들일 수 있으며(誠意), 성의를 다해야 마음이 바르게 되며(正心),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 수신(修身)이 된다. 수신이 되어야 집안이 가지런해지며(齊家), 집안이 가지런해진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며(治國), 나라가 다스려진 연후에 평천하(平天下)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격물치지 하면 가장 먼저 화담 서경덕(徐敬德, 1489~1546) 선생이 떠오른다. 선생은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로 유명하며, 박연폭포,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일컬어진다. 그의 어머니가 공자의 사당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낳아서인지 어릴 적부터 총기가 남달랐다고 한다. <화담집>에 보면 어렸을 적 나물을 캐러 가면 매번 늦게 돌아오는데 정작 바구니에는 반도 못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까닭을 물으니 “종달새에 정신이 팔려 나물을 캐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틀 전에는 어린 종달새가 한 치쯤 날아오르더니 어제는 두 치를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 치쯤 날아올랐습니다. 왜 그런지 그 이치를 생각하느라 나물 캐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선생은 종달새가 가벼운 깃털로 하늘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지기(地氣, 땅에서 솟아오르는 기운) 즉 따뜻한 봄날의 상승 기류(아지랑이)에 의해 쉽게 날아오른다고 이치를 설명하였다. 이처럼 선생은 모든 사물을 그냥 지나치는 일 없이 관찰하고 깊이 궁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4세 때 서당에서 태음력의 일(日)∙월(月) 운행도수에 관한 <서경>의 구절을 읽는데 훈장도 배우지 못했고, 또 이치를 아는 자가 드물 것이라며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선생은 며칠 동안 밤낮은 물론 침식조차 잊은 채 몰두하여 보름째 되던 날 그 역법(曆法)의 이치를 깨달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18세 때는 <대학>의 ‘격물치지’를 읽다가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을 하지 않으면 글을 읽어서 어디에 쓰리오!”라고 탄식하고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다 써 붙여 두고는 날마다 힘써 연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서화담은 사물을 탐구하는 격물에 치중하여 앎의 궁극에 이르는 격물치지로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완성하여 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객관적 사물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선입관을 버리고 정심(正心)으로 집중하는 마음가짐이다.
/한태일 한역(韓易)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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