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수 좋고 역사 깊은 천년 고도에 우리 학교 차지한 터 반석이로다.' 내가 졸업한 송도고 교가다. 피난 내려 왔다가 개성(옛 松都)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임시로 송학동 교육청 창고를 빌려 썼고 53년에 중구 답동 현 송도중학교 자리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터를 잡았다. 83년에는 송도중·고를 나눠 고등학교만 연수구 옥련동으로 이전했다. 일찌감치 남동구 구월동에 학교이전용지를 매입해 두었다가 주택공사가 수용하는 바람에 송도(松都)가 송도(松島)로 가게 되었다. 원래는 중학교를 먼저 옮길 계획이었다는데 막판에 학급수가 적은 쪽을 옮기게 되어 고등학교만 가고 중학교가 남았다.
개교 이래 120여 년, 반석이길 바랐던 송도학원 터에 얽힌 역사는 기구하다. 터의 역사를 셋으로 나누면 머리는 북쪽 개성이고 몸은 남쪽 인천 중구 답동이며 다리는 인천에서도 송도와 답동으로 갈려 있다. 머리와 몸 사이에 전쟁이 끼어들었고 다리가 가려던 땅을 주공아파트가 차지했다. 구월동 시대를 열었다면 지금 송도중학교가 겪고 있는 원도심 학생 수 감축 직격탄은 남의 일이 되었을 수 있다. 원래대로 중학교부터 이전했더라면 학생 수 배정 문제에서 사립고등학교인 송도고 처지가 나았을 수 있다. '100년 학교'라서 겪어내야 했을 파란만장은 근현대사에 서린 아픔을 품은 도시 인천과 떼놓고 말할 수 없다.
송도는 “영등포, 수원, 인천 세 곳을 놓고 고심 끝에, 경기지구와 강화도에 산재해 있는 개성과 연백의 피난 학생을 고려하여 그 중심지인 인천”으로 왔다.(송도학원사) 피란 도시였던 인천이 나눠서 질 책임은 없을까? 급속히 팽창하는 인천에서 학교 관계자들은 도시 발전 추이에 둔감했다. 학교이전 예정용지가 아파트가 되었고 구월동 시청사 시대가 열렸다. 인천시는 '100년 학교'에 할 말이 없을까? 옥련동 구릉에 남자고등학교가 섰고 대단지 아파트를 분양한 기업들은 이득을 얻었다. 인천은 바다를 매립하고 또 매립해 확장을 거듭했다. 거기 학생들을 야산 꼭대기 송도고등학교가 키웠다. 연수구가 성장하며 '100년 고등학교'는 새터에 안착했지만 '100년중학교'는 옛터에 남아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인천에는 '100년 학교'가 18개 있다. 송도, 영화, 박문이 사립이고 나머지는 공립이다. 100년 전부터 터 잡고 역사를 살아왔으니 인천에서는 늙는 지역에 위치한다. 강화에만도 여섯 군데다. 공교롭게도 내가 공부했던 창영초등학교 옛 교사가 원도심 '100년 학교'를 상징하는 유형문화재다. 취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학교 존속 여부까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10여 년 전에 동구에 있던 박문중·고가 신도시로 빠져나갔고 송도중과 창영초가 이전을 추진 중이다. 송도중 학부모들과 창영초 학부모들은 학교이전에 적극적이다. '앉아서 말라 죽느니 뭐라도 해 보자'는 심경이다. 학교 인근 원도심 주민들은 학교마저 사라진 동네의 미래가 불안하다. 이전 찬반양론이 서로 피해를 호소하면서 각축 중이다. '100년 학교'를 살리기 위해 이전하자는 의견도 절절하고 '100년 학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 남기자는 논리도 정연하다. 솔로몬도 풀 수 없는 이 '100년 방정식'을 넘어서야 인천은 잘 늙는 도시가 될 수 있다. 난제일수록 여러 열쇠가 필요하다. 이전과 보존 사이에 여러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도와 모로 극단화하지 않으면서 지난 100년을 되짚어 남길 요소를 추려 낼 수 있는가? '100년 학교'에 남은 세월의 풍상을 지우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가능한가? 교육청과 시청은 물론 인천 시민들이 받아 든 질문이다. 도시에 맺힌 주름을 애정으로 매만지면 기품이 깃든다. 인천이 살아낸 교육 주름살을 늙어가는 도시에 서훈처럼 남길 방안은 없을까? 천년고도는 언감생심, '100년 학교위원회'라도 소집해 함께 답안지를 써 내려 가야 할 때다.
/임병구 인천석남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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