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 팜팡가 인근 토착민 아이타족에게는 기념비적인 일이 있었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지저스필름에서 그들의 토착어인 아이타 막안치(Aeta Mag-anchi)로 예수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더빙을 마치고 상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리핀 소수민족 중 하나인 아이타족 그중에서도 팜팡가 산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사는 막안치어 사용 아이타에게는 최초로 자기들의 언어로 시청할 수 있는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일이었다.
70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인 필리핀은 수많은 이민족과 다른 언어를 가진 100여개 이상의 부족집단이 존재한다. 아이타족은 주로 마닐라가 위치한 루손 섬의 중부와 남부에 자리를 잡고 살며 막인디어, 암발라어, 막안치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를 사용한다. 막안치어는 멸종 위기에 처한 언어로 간주하는데, 많은 젊은 아이타족들이 타갈로그어와 같이 더 널리 사용되는 언어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어는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으며 팜팡가 아이타족 문화적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막안치어 더빙영화가 제작되기까지는 10여년 이상의 숨겨진 수고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타 마을과 인접한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고 그들과 직접 대화해 가며 성경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한 미국 선교사들이 있었다. 두세 차례 그들을 보고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덥고 건조한 또 무료할 것만 같은 그곳에서 선교사들은 책과 노트북을 놓고 씨름해가며 어느 부족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타 리더 중 한명인 목사님을 모시고 주일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는데 지저스필름 막안치 버전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과 하루에 몇 시간씩 대화하며 막안치 단어를 설명해 주었던 것이 그 목사님 부부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컴퓨터 사용법과 영어를 어느 정도 익혔으니 멈춰진 구약성경은 자신들이 번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또 아이타족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도구로 영화가 완성되었는데 산속 마을마다 다니며 상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아이타마을은 대부분 산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팬데믹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전기가 없는 곳도 많았다. 그래서 후원자를 연결해 발전기와 블루투스 스피커 등을 지원받고 산악용 지프 트럭을 빌려 쌀과 장비들을 싣고 아이타마을을 방문해 예수님의 일대기를 상영하는 노천극장과 농구장집회가 아이타 목회자들 주도로 시작되었다. 반응은 놀라웠다. 예수님이 아이타 막안치어로 말씀을 전하시고 제자들과 지역을 옮겨 다니며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베푸시는 모습을 시계가 아닌 해로 시간을 맞추며 사는 그 산속 마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었으니 많은 사람이 스크린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저스필름처럼 선교대국 미국의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을 통해 필리핀에 만들어진 좋은 프로그램과 시스템들이 있다.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 나라의 사역자들이 연합하여 좋은 열매를 맺게 하셨다.
/이정은 필리핀 아누나스 행복한우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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