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이후 최고 상승률
식료품 1년 전 대비 5.8% 올라
“더 부지런히 다녀 후원 받아야”
덮밥·간편식 제공 '고육책'도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골치가 아파요. 그렇다고 음식양을 줄일 수도 없잖아요.”
1월 가정용 전기·가스 등 에너지 물가가 1년 새 30% 이상 상승,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6일, 안양시 만안구 안양중앙시장 내 자리한 '㈔환경사랑나눔의집' 무료급식소(경로식당)를 찾았다.
대면 배식을 재개한 이 급식소는 70세 이상 어르신 200여명이 매주 월∼토요일 점심 한끼를 해결하는 장소다.
이날도 오전 8시 30분 어김없이 급식소의 문을 연 것은 자원봉사자들이다. 40여명의 봉사자들이 요일별로 돌아가며 어르신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준비한다.
이날 평촌1번가봉사단 회원 5명이 주방에서 음식 재료로 사용할 양파와 대파, 당근 등 야채를 부지런히 손질한 뒤 채를 썰고 있었다.
대형 솥에는 밑반찬으로 나갈 도라지가 버무려졌다. 하지만 주방 안에는 그 흔한 웃음기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식재료비는 물론 전기·가스요금까지 가파르게 오르면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22년째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광준(80) 대표는 “모든 물가가 작년 이맘 때에 비해서 평균 40% 이상은 오른 것 같다”며 “물가가 올랐다고 후원금 100원 들어오던 것이 200원 들어오겠느냐”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10년 넘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주부 최모(63)씨는 “대파 한 단에 3500원, 애호박 하나에 4000원까지 간다. 말이 안되는 거죠.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어요”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약 330㎡(100평) 규모의 급식소를 운영하기 위해 식재료비는 물론 매달 임대료 140만원, 주방 대형 냉장고 10대를 돌리는 전기세 100만원, 수도요금 10만원 등 나갈 돈은 늘어나지만 코로나19로 후원은 줄었다.
안양시에서 식자재비 등 시설 운영비 월 1700만원과 취사원 인건비 월 300만원을 각각 지원하고 조이에너지에서 LPG 가스를 후원하지만, 매달 500만원의 후원은 더 받아야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가가 올라도 자식들과 떨어져 홀고 힘겹게 사는 어르신들에게 드릴 음식 가짓수나 양을 쉽사리 줄일 수는 없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한 사람 양에 맞춰서 드려야지, 물가 올랐다고 200g 드릴 것을 100g 드리면 안된다. 22년이나 하는 봉사인데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말아야지”라고 말하는 박 대표의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났다.
“코로나19로 후원이 50% 이상 줄었다”고 말을 잇던 그는 “전기료도 더 오른다는데 앞으로는 더 많이 나오겠죠. 더 부지런히 돌아다녀 후원을 받아와야 한다”고 애써 웃어보였다.
시계가 11시10분을 가리키자, 이날 1차 배식이 시작됐다. 배식 전부터 급식소 안은 삼삼오오 모여든 노인들로 빈 자리가 없었다.
이날 밥상에는 잡곡밥에 소불고기, 도라지나물, 미역줄기볶음, 김치가 올랐다. 90세가 넘은 백발의 한 할머니는 “여기서 밥 먹으니까 이 만큼 살았다”고 감사를 표했다.
안양역 인근에 있는 ㈔유쾌한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안양희망사랑방(노숙인쉼터)'에서도 월~토요일 오후 4시 노숙인, 실직자, 홀몸노인 등 취약계층 150여명에 무료로 도시락과 간식을 나눠준다.
밥과 국, 5찬을 기본으로 제공하던 이 곳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위해 지난달부터 덮밥 위주로 메뉴를 바꾸거나 1주일에 한 번은 도시락 없이 빵과 음료를 제공하는 고육책을 냈다.
쉼터 사무국장은 “예년 이맘 때 50∼60만원 나오던 도시가스 요금이 지난달에는 100만원이 넘게 나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기, 가스 및 기타 연료 물가지수는 135.75(2020년 100 기준)로 1년 전보다 31.7% 올랐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4월(38.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달 식료품 물가도 1년 전보다 5.8% 올랐다. 한 달 새 1.7% 상승했는데, 이는 2021년 2월(2.2%) 이후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노성우 기자 sungco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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