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은 참 묘하다.
인류가 기록되고부터 가장 친숙하게 다가왔다. 술을 통치에 이용하기도 하고 금주로 다스리기도 했지만, 술 명맥은 수천 년 이어졌다.
친척 중 양조장을 거창하게 한 분이 계셨다. 99칸 기와집을 배경으로 앞쪽에 거대한 술 도가니가 있는 양조장이었다. 배달원만 수십명, 그 집에서 준 누룩으로 어머니는 술을 빚었다. 그 맛은 기가 막혔고, 그 덕에 아버지 친구분들은 수시로 집을 찾았다.
술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청 많다. <우리 술 이야기> 또한 수없는 얘기가 복합돼 책으로 묶였다.
이대형의 전통주 인문학이란 타이틀로 시작된 <우리 술 이야기>는 다 아는 글이라 친숙하다. <인천일보>가 연재 중인 '유진용의 발효이야기' 또한 같은 맥락으로 좀 더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술 이야기>에서는 '인천'이 근대 술 문화의 포문을 열었고, 일제강점기 인천을 통해 '정종'이라는 국정 불문의 술이 빚어지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조선시대 맥주' 편에서 인천과 맥주의 사연이 등장한다. 책 69페이지를 펴면 '맥주병을 들고 있는 아전 김진성'의 사진이 나온다. 이탈리아계 종군 사진가 펠리체 베아토가 찍은 이 사진은 한아름 맥주병을 들고 있는 상투 튼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신미양요는 인천에 치욕이다. 어재연 장군기(수자기)를 뺏겼고, 우린 그 깃발을 미국으로부터 2년마다 대여 중이다.
이대형은 “2021년 5월14일 충장공 어재연 장군 순국 신미양요 15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사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실렸다”며 “이 사진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 미군 함대를 찾은 조선인 관리 중 한명인 인천부 아전 김진성을 찍은 사진이다”고 설명했다. 또 “김진성은 엷은 색깔의 다 마신 배스(bass, 영국 맥주회사) 맥주병 10여개를 보스턴 발행의 사진판 신문인 '에브리 새터데이'에 싸서 안고 있는 모습이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조선인이 마신 최초의 외국 맥주일지 모른다'고 언급한 이대형. 하지만 신미양요는 우리나라의 빗장을 더 걸어 잠그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책은 틀렸다. 개항은 1883년이다.)“우리나라는 개항 1876년 이후 서울과 개항지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주자가 늘면서 일본을 통해 세계의 맥주가 흘러들어왔을 것이다”고 밝혔다.
국적 불문의 술, 제수로 올리는 맑은 술이라 귀하게 여겨 상에 올리는 '정종'. 사실일까. 일제가 빚은 왜곡이다.
이대형은 “정종이라는 이름을 상표명으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보니 보통명사화되어 어느 양조장에서나 사용이 가능했다”며 “정종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운 술들이 지역마다 등장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에는 표정종(瓢正宗)이란 이름의 정종이 생산됐다. 표정종을 찾았다. 일본의 오랜 술 빚는 곳으로, 나고야(토요타시) 근방 풍전주조(豊田酒造)에서 생산되고 있다. 풍전주조는 “도요타 땅에서 150년 일본 술 본래의 맛을 내기 위해 손으로 만드는 주조”라고 누리집에서 홍보한다.
이대형은 “전통주와 관련된 분들이나 대형 양조장을 하는 분들의 견이 달라 서로 화합하기 어려운 이유를 알게 됐다”고 서문에 썼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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