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0월 기념 '제1회 종합예술제'
향토 예술인 1000여명 참여 큰 축제
예총예술제, 시화·국악·연극 등 진행
서예전람회, 시민 공모전 입상작 전시
1983년 '제물포 예술제' 명칭 변경
2022년, 코로나19 딛고 40회 행사
1960년대 열린 '제물포제'가 모태
6회 축전 기사엔 “미군·화교도 초청
시민 20만명 박수갈채·폭죽” 기록

인천일보와 인천문화재단은 1981년 인천직할시, 1995년 인천광역시 승격에 맞춰 그간의 인천 문화 관련 40년의 역사를 되새겨봅니다. 인천을 더욱 풍요롭고, 따뜻하게 가꾼 지역의 문화 관련 각종 사건 등을 전문 필진을 통해 독자 여러분게 전달합니다.

경기도에 속해 있던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며 '인천직할시 종합예술제'가 열렸다.
1981년 10월 21일부터 27일까지 제1회 예총 예술제와 제1회 서예 전람회로 나눠 개최됐다.
제1회 예총예술제의 행사 종목은 신포동에 있는 은성다방(銀星茶房)에서 베푼 시화전(총 50점), 시민회관에서 펼친 음악회, 국악공연, 연극공연, 합창제, 콩쿨대회 등이었다. 한편 서예전람회는 신흥국민학교 강당에서 같은 기간 동안 총 179점이 응모한(한문 108점, 한글 24점, 사군자 40점, 전각 7점) 작품 중 입선, 입상한 70점(한문 49점, 한글 7점, 사군자 7점, 전각 5점)을 전시했다.
1982년 3월 정식으로 발족한 예총 인천직할시지부에서도 이 행사를 이어서 제2회 예술제를 개최했는데, 행사를 구분하지 않고 통합해서 1982년 10월 12일부터 11월 7일까지 개최하였다. 행사 종목은 합창제(10월 12일 시민회관), 무용제(10월 13일 시민회관), 연극제(10월 14일 시민회관에서 <이대감 망할대감>), 국악제(10월 15일 시민회관), 신작 가곡발표(10월 15일), 미술초대작가전, 시화전(10월 20일~26일, 공보관 전시실), 문화교양강좌(11월 13일, 문화회관 강당에서 한국펜클럽부회장 성기조, 시인 한상억이 강연), 서예전람회(11월 1일~7일 노인회관, 157점 출품 중 입상작 39점) 등이다.
그러나 이 예술제는 제2회를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인천의 직할시로의 승격은 개항 이후 시민이 받은 최대의 선물이라 하여 거시적으로 축제를 올렸다. 1981년 10월 12일부터 20일까지 9일에 걸쳐 시민회관에서 합창제, 무용제, 연극제, 국악제, 가곡 발표회, 미술·사진작가 초대전, 시화전, 교양 강좌, 시민 서예 공모전을 열어 입상 작품 시상식도 성대하게 베풀었다.'

<인천예술 50년사>의 서술과 날짜가 맞지 않는다. 10월 12일부터 열린 것은 1982년도 행사였다.
'예총 인천직할시지부(지부장·이철명)는 문화의 달 10월을 맞아 20일 오후 3시 공보관에서 문화의 날 기념식을 갖은 후 21일부터 28일까지 제1회 예총 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인천직할시와 시교육위원회가 후원하는 이번 예술제는 제2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인천에서 베풀어지는 때를 맞추어 시민회관·공보관을 비롯 신흥국교 강당·은성다방 등에서 펼쳐지고 있다.
인천의 향토예술인 1000여 명이 대거 참여, 뿌리 있는 인천의 예술을 가꾸기 위한 이번 예술제는 문화의 날 기념식에 이어 20일 하오 5시 신흥국교 강당에서 인천서예전 입상작 60점(서예·사군자·전각)을 전시하여 개막식을 개최하면서 막을 올렸다.
이어 21일부터 27일까지는 은성다방에서 인천직할시 승격과 민속예술경연잔치를 경축하는 시화전이 개최되어 최성연 씨의 <모시치마적삼> 등 21명의 회원이 35점의 작품을 내걸고 있다.
24일과 25일에는 공보관에서 초, 중·고생들의 성악, 피아노, 창작 등을 겨루는 학생음악 콩쿠르를 개최, 향토 음악의 발전과 유능한 신인 음악도를 발굴하기도.
이어 26일 하오 7시에는 시민회관에서 음악회의 막을 올리고 신성은(소프라노)의 <동심초>와 <바위와 같이> 등 클래식의 밤을 맞게 된다.
연극제는 27일 시민회관에서 <만선>이 무대에 올려지고 28일에는 오후 7시 시민회관에서 에스터 합창단 등 7개 합창단의 2백40여 명이 참여, 합창제를 갖고 제1회 예총 예술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 기사보다 보름 앞선 <경기신문> 1981년 10월 8일 자는 '제물포문화제인 제1회 인천서예전이 오는 10월 21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다'고 하여 서예전 소식을 별도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처럼 1981년 직할시 출범 종합 예술제를 '제물포 문화제'로도 불렀다.

'제물포 문화제'라고도 칭했던 종합 예술제는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60년대부터 '제물포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거대한 축제의 물결이 며칠 동안이나 인천 전역에서 굽이치고는 했다. 1970년 제6회 행사를 예로 들어보자. <경기연합일보> 1970년 6월 1일 자이다.
'……제6회 제물포제 축전은 이날 상오 10시 자유공원에서 수많은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올려짐으로 그 막이 올려졌다. 이날 따라 하늘도 축복하듯 맑게 개어 유난히도 푸른 초여름 하늘을 오색찬란의 불꽃이 정각 10시 폭음과 함께 인천의 하늘을 수놓고 해상에서는 정박 중인 각 선박이 일제히 취명 제물포제 경축 개막을 고했다.……'
신문은 또 이날 기념식에 에스캄 사령관과 화교자치위원장 등도 참석했다고 전하고 있다. 부평 미군부대 사령관이 행사에 참석할 정도였으며, 이때는 화교 대표를 외부 인사로 초청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미군과 화교까지도 제물포제를 함께 기념했다는 얘기다. 이날 시내 일원에서는 촬영대회가 열리고, 율목공원에서는 시조경창대회, 주부촬영대회, 주부백일장, 가장행렬 시가행진 등도 펼쳐졌다. 다음 날 신문은 1일 오후 4시부터 진행된 가장행렬에 20만 명의 시민이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날 가장행렬은 15개 초·중·고 밴드가 앞장을 서고, 15개 단체가 참여했다. 제물포제 사흘째가 되는 6월 3일에는 문학세미나(제1공보관)와 시립교향악단의 경축 연주회(동산고교)를 각각 가졌다. 개막식 하루 전인 5월 31일 저녁에는 폭죽을 쏘아 올리는 요즘으로 치면 불꽃놀이 행사도 전야제 형식으로 가졌다.
1970년에 제6회 제물포제가 치러진 것은 1965년부터 시작한 제1회 시민의 날 행사부터 그 연원을 삼기 때문이다. 여기에 1968년 6월 1일부터는 항도제라는 행사도 아울러 열렸다. 이 두 행사를 합쳐서 1969년 6월 1일 행사부터는 '제물포제'로 불렀다.
이렇게 매년 치러지던 대규모 문화 행사가 직할시 출범과 함께 바뀌었고, '제물포 예술제'라는 명칭으로 행사를 치른 것은 1983년부터이다. 이때 제1회 행사를 가졌으며, 2022년으로 꼭 40회를 맞이했다. 제40회 제물포 예술제는 2022년 11월 18일부터 11월 30일까지 수봉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인천국악협회, 인천무용협회, 인천연예예술인협회, 인천음악협회, 인천사진작가협회, 인천미술협회, 인천연극협회, 인천영화인협회, 인천문인협회 등 인천예총 구성 단체들이 나서서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펼쳐냈다. 40회 행사의 타이틀은 '인천예술의 모든 것을 기록·공유하다'였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 19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많은 분들의 참여 속에 성황리에 개최됐다.
/인천생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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