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릇, 뱀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그러하다. 한여름 텃밭에서 깻잎을 따다가 맹독성의 쇠살모사에게 새끼손가락을 물린 것은 뱀의 잘못이 아니다. 또한, 그 누구의 불행도 아니다. 뱀은 한낮의 땡볕 아래서 오수를 즐기고 있었고 깻잎을 따려는 지각없는 나의 손동작을 보며 기민하게 반응했을 뿐이다. 고소한 향을 날리는 깻잎파라솔을 따버리는 나의 살찐 손가락이 개구리의 뒷다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새끼손가락 끝마디가 불길에 활활 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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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시, 깻잎을 따기 위해 깻잎밭으로 들어간다. 뱀에 물린 오른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왼손으로 깻잎을 따러 나는 깻잎밭으로 들어간다. 죽기보다 싫었을 시집살이를 버티고 나란히 중풍으로 쓰러진 시부모의 오강 단지를 매일같이 수세미로 문지르던 젊은 어머니는 아직도 칠순 나이에 우리 집 빌라 평수보다 작은 임대아파트 계단을 쓸고 닦는다. 맹독의 혀가 날름거리는 복도식 창가에 기대어 흰 수건으로 땀을 훔친다.

<7> 그리고, 나는, 이제 울지 않는다. 좀처럼 우는 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끔 울음이 울컥 치밀어 목울대가 울렁거리지만 토해내는 법을 잊어버려 다시금 삼켜버리고야 만다. 남들은 불혹이 넘어 이제야 철이 든 거라며 다독거리지만 도무지 모르시는 말씀이다. 김영승의 '반성'이나 신기섭의 '죄책감'이 남은 생과 남겨진 생을 위해 노래할 때, 나는 그저 요오드를 바르고 거즈로 이 작은 상처를 덮을 뿐이다.

<8> 다시금 말하건대, 깻잎도 뱀도 그리고 나도 이제 울지 않을 것이다. 장마가 끝났다고 말하지만 언제고 장마는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우리의 공생도 남은 생과 남겨진 생을 위해 그 자리를 지켜야 할 것임을 안다. 그리고 일기에 다시 쓴다. 이제 나는 멋진 시를 쓰지 않을 것이다. 출혈과 괴사로 내 오른팔이 잘려 나가지 않은 것은 행도 불행도 아니다. 왼손으로만 세수를 하면 얼굴이 좀처럼 개운하지가 않다. 오래 걸리고 더 꼼꼼히 씻어야 한다. 그럼에도 귓바퀴에 묻어 천천히 만지작거려야 할 비누 거품은 오로지 내 몫이다.

 

▶ 깻잎밭에서 맹독성의 쇠살무사에게 새끼손가락을 물리고도 우리는 “다시 깻잎을 따기 위해 깻잎밭으로 들어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도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요오드를 바르고 거즈로 이 작은 상처를 덮”고 살아갈 뿐이다. 상처를 받았던 기억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또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삶을 살아간다. “맹독의 혀가 날름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다시 서 있다. 모든 것은 “행도 불행도” 아닌 그저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몫.

소란스러움이 지쳐 떠나왔으나 평온은 잠시. 애써 비운 자리에는 어느새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불길에 활활 타는 느낌”이 나는 오른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왼손으로 깻잎을 따러 나는 깻잎밭으로 들어간다”.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