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외재판부 시민 위한 서비스 … 유치 막바지 왔다"
▲ 이종엽 변호사가 인천광역시 법률고문 위촉장 사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변호사 개업을 일찍 했어요. 그런데 사익 추구 활동만 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변호사는 사회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죠. 그런데 과연 그 사람들이 본연의 역할을 하는가. 이런 반성이 있었어요. 사회에서 공익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회장에 도전했지요."

이종엽(53) 인천지방변호사회 제19대 회장은 1995년 인천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다사다난했던 20여 년간의 활동은 이제 인천지역 변호사 600여명을 대표하는 회장으로 개화(開化)한다. 그는 "술 마시고 골프 치는 게 큰 의미는 없다"고 했다. 송무 중심의 사익활동은 그의 정체성이 아니었다.

반면 지역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뚜렷했다. 그가 지난해 2월부터 추진했던 '서울고등법원 인천 원외재판부 유치 운동'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에게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활동, 원외재판부 유치 운동의 전망을 들어봤다.

밉보인 검사, 변호사로 자리 잡다

학생 이종엽은 모범생이었다. 공부가 그에게 가장 큰 업이었지만, 시대는 혼란스러웠다.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10·26 사태가 벌어졌고, 전두환 대통령이 12·12 사태를 일으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어요. 저는 학생운동에 나서진 않았지만 친구들은 숱하게 나갔지요. 저를 포함한 이 세대를 지나온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고민했을 거예요."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군법무관을 거쳐 검사로 임용된 그는 조직에 잘 적응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검찰에서의 '자기 개발'이 제한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풀어냈다. 한 명의 검사가 혼자 원칙대로 수사하기에 '외풍'은 너무나 강했다.
그는 변호사 개업으로 재야에서 법조의 길을 걷기로 한다. 그는 창원지검에서 사표를 내고 고등학교를 나온 인천에 사무실을 냈다. 큰 욕심은 없었다. 법조시장은 괜찮은 편이라 먹고 살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돈만 버는 게 변호사의 전부는 아니었다.

변호사회 회장에 도전하다

그는 10여 년간 일을 하다가 2005년 변호사회 공보이사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외부와 접촉하며 지역사회에서의 저변을 넓혔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예전에는 인천지역 변호사가 80명밖에 안됐어요. 그러다보니 서로 교류도 활발했고요. 당시 변호사회는 친목단체와 비슷했지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죠. 배출되는 변호사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이제 인천에만 변호사가 600명 가까이 됩니다. 새로운 운영이 필요했어요."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젊은 변호사들은 크게 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검사와 판사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로스쿨 출신이 법조의 주류가 될 것이라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이들의 공간을 열어줘야 했다. 그가 회장으로서 시행할 정책도 여기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젊은 변호사들이 변호사회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정책을 기획하고 시행하고 싶어요. 미래를 봐서 그들에게 투자하는 게 맞습니다. 후배를 키워야 해요. 이들을 트레이닝할 장치와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지금의 실무교육 6개월 강의로는 부족해요."

"원외재판부 유치, 뒷심 발휘해야"

이 회장과의 대화에서 원외재판부 유치 운동이 빠질 순 없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유치 위원장을 맡아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그동안 항소심에 직·간접적으로 임하는 인천시민들은 반드시 서울로 가야 했다. 인천에 고등법원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인천 인구 300만명, 부천 등 주변도시까지 총 420만명의 시민들이 같은 불편을 겪고 있다. 이 회장은 인천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법원이 직접 시민을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의 성과는 컸다. 국회는 법원에 원외재판부 설치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법원 행정처도 원외재판부 설치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미 당위성은 확보된 셈이다. 이제 막바지 뒷심과 타 지역과의 조율만 남아있다.
"변호사회도 시민단체의 연합체인 인천시 소통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어요. 원외재판부 유치를 공동의제로 채택한 상태지요. 이제 시민단체와 함께 지역 여론이 뒷받침된다면 금방 가능할 겁니다. 2017년부터 시민단체와 연대해 법원 행정처를 방문하거나 촉구 설치 결의문을 채택하는 활동을 벌일 겁니다. 지역 국회의원 13명의 공동성명서도 요청할 계획에 있습니다."

"법률전문가 거쳐 세금 아껴야" … "혼란스러운 사회 정치인 각성 필요"

그는 최근 몇 년간 인천시와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법률고문으로 일하며 계약 관계 때문에 낭비되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각종 계약에 앞서서 법률전문가가 검토하고 스크린하면 확실히 사후 분쟁이 줄어들어요. 소송이 벌어지면서 낭비되는 돈을 크게 줄일 수 있죠. 사실 별로 수입이 안 되는 일이죠.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 세금을 크게 아낄 수 있어요. 그런 부분에선 저도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도 과거 허술했던 모습에 비해 지금은 많이 발전하고 개선됐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최근 소란스러운 나라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다. 정치가 혼란스러우니 사회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갈등을 키우는 면이 있습니다. 당리당략이나 자기 영달이 아니라 국민을 보고 일하고 행동했으면 해요. 정치인들이 각성해야 합니다."
한 명의 법률가로서 개헌에 대한 생각도 생각을 풀어놨다. 1987년 체제는 이제 수명이 다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개발독재가 끝났으니 강력한 중앙집권적 헌법도 없어질 때가 됐습니다. 권력을 분산하고 나누는 형태의 개헌이 이뤄져야 합니다."
/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

이종엽 변호사는

1987년 2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92년 인천지검 검사
1994년 대구지검 영덕지청 검사
1995년 창원지검 검사
1995년 4월 변호사 개업
2005년 3월 인천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
현) 인천시 법률고문
현)법무법인 케이앤피 구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