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게 달달하게 '낯선 리더십' 어필 …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파"
▲ 경기지방경찰청 마지막 청장이자,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초대 청장을 지낸 정용선 전 치안정감(현 세한대학교 경찰소방대학장)이 30년 경찰생활을 기록한 자서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경기경찰청 마지막 청장이자 경기남부경찰청 초대 청장 역임
작년 12월 퇴임 … 재임 시절 생각·느낌 정리한 내용으로 출간
"경찰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 … 현재 후학 양성 매진

2대 8 가르마의 단정한 헤어스타일. 사람 좋은 선한 미소. 경기지방경찰청 마지막 청장이자,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초대 청장을 지낸 정용선(54) 전 치안정감의 풍모는 변함이 없다. 30년간 경찰 제복을 입었을때나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할 때나 한결 같다.

지난해 12월 1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을 퇴임했던 정 전 청장은 4월 6일 세한대학교 경찰소방대학장으로 임명됐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그는 경찰 퇴임 후 4개월간 재임 당시 일기쓰듯 생각과 느낌을 정리했던 내용들을 모아 자서전을 출간했다.

17일 <정용선의 낯선 섬김〉의 저자가 되어 인천일보 경기본사를 방문한 정 전 청장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했던 경찰이 있었구나'라고 독자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전 청장의 지나온 삶과 30년에 걸친 경찰생활을 고스란히 녹여낸 자서전의 인기는 대단하다. 4월 13일 세상에 나온 자서전은 3일만에 초판이 품절됐고, 현재 2쇄가 인쇄돼 판매되고 있다.

경기시각장애인협회에서는 정 전 청장의 책을 음성으로 녹음해 소리도서관에 비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인들과의 출판기념회도 열지 않고 서점을 통해 일반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그의 자서전이 출판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뼛속까지 경찰관인 정 전 청장의 반듯한 인생과 일반 독자들에게 낯선 경찰 이야기가 따뜻한 감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따뜻한 리더십은 일반 독자들에게 '낯선 리더십'이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다.

335쪽 분량의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경찰관이 되기까지의 사연, 경찰 고위간부로 이뤄낸 업적과 경찰조직을 향한 열정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모에 대한 효심이 드러날 때는 눈물샘을 자극하고, 아내와 자녀들과는 달달한 애정을 보여준다.

책을 읽고 티슈 15장을 쓸 만큼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는 독자평도 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돌봐야 하고, 조금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라"는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온 정 전 청장은 치안 약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랑을 실천해왔다.

정 전 청장에게 경찰의 존재 목적은 사회적 약자들이 서럽고 불편하고 답답한 일을 겪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시도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시책들은 치안환경 개선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탈북민, 결혼이주여성, 범죄피해자, 실종가족들을 위한 경찰차원의 맞춤형 치안대책들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2012년 그가 충남경찰청장으로 재임할 당시 시행했던 노인안전치안활동은 같은 해 노인의 날 대통령 단체 표창을 받았다. 이후 충남청을 비롯 대전청, 경찰청 수사국, 경기남부청 등 4개 기관은 한국장애인인권상을 잇달아 수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차적조회 생활화를 통해 민생치안을 강화하고, 특별형사대를 조직해 제2의 오원춘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적 형사활동을 하는 등의 시책도 호평을 받았다.

이토록 정 전 청장이 경찰 본연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이끈 사람이 어머니였다면 그를 철 들게 한 사람은 딸이었다.

정 전 청장은 3년째 청와대 치안비서실 파견 근무 중이던 2001년 총경 승진 심사에서 연거푸 탈락해 불만이 극에 달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이 "아빠 공무원이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하셔야지 승진하려고 일을 하시면 돼요?"라고 한 말이 가슴을 내리쳤다. 그렇다. 공직자의 목표는 '승진'이 아니다. 딸의 입바른 소리에 그는 '공직자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보다 역사와 국민 앞에 더 큰 죄는 없다'는 신념으로 솔선수범, 언행일치, 초지일관 세 가지를 끈질기게 실천해왔다.

또한 사춘기 딸의 이유있는 반항이 정 전 청장을 술에서 건져냈다. "술 먹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어기는 아빠가 딸에게 순종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는 딸의 반항은 11년째 그를 금주하도록 만들었다.

경찰 고위 간부로서 술을 끊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그는 딸과의 일화 이후로 일절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정 전 청장과 함께 근무했던 경찰관들은 그를 워커 홀릭으로 기억할 만큼 그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을 즐겼다. 경기청장 재임 시절 선진 경찰로 나아가기 위해 646가지 관행을 찾아내 555가지를 개선했고, 나머지는 개선 중이거나 개선 검토 대상에 올랐다.

얼마나 일을 만들어서 했던지 경찰관들의 불평불만도 있었고,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음해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정 전 청장은 "경찰조직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지켜내고자 많은 고뇌를 했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며 "때로는 '이게 경찰이 할 일이냐? 왜 그런 일까지 하느냐? 전시행정 아니냐?'는 일각의 불평과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부하직원들의 실수에도 화 한번 내지 않아 'GOD 용선'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정 전 청장은 경찰관서 청소원이나 의경들에게까지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소탈한 사람으로 통한다.

그런 그가 경찰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잊지 않는다. "경찰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이라며 "긍정, 공정, 열정, 다정, 진정. 이 5정을 가슴에 품고 어떤 일을 하던 진정성 있게 하는 경찰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전 청장은 앞으로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직접 제안하고 시작했던 치안시책들에 대해 추진배경, 추진과정, 성과와 한계, 향후 발전 방안 등을 정리할 생각이다.

경찰이 되기 위해 태어났고, 경찰로 살아왔고, 경찰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정 전 청장은 말한다.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싶다고. <정용선의 낯선 섬김〉처럼 따뜻하고 바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박현정 기자 hjpark@incheonilbo.com

▲정용선 학장은
1964년 충남 당진 순성에서 태어나 면천 초·중학교, 대전대신고등학교를 나온 뒤, 경찰대학 3기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진경찰서장과 서대문경찰서장, 대통령비서실의 행정·정무·민정수석실에서 행정관 경찰청의 정보2과장과 기획조정과장, 경찰청의 정보심의관, 경찰청의 생활안전국장과 수사국장, 경찰교육원장, 충남·대전·경기·경기남부경찰청장을 역임했다. 경찰 재직중 대통령상, 대통령 표창, 근정포장,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한성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현재 고향인 당진에 위치한 세한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