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떠났다, 영화를 만났다
▲ 최선희 '울산세계산악영화제' 프로그래머.

로고부터 사업총괄 예산까지 출범 전부터 기획하며 만들어 온 행사
2회 만에 국제산악영화협회서 인정 … 올 아시아 대륙 대표 선임까지
영화·등반 모두 늦은시작에도 열정과 호기심 만큼은 누구보다 앞서
지역적 한계와 소재의 제한 뛰어넘어 세계적 축제로 만드는게 목표

"올해 국제산악영화협회(IAMF) 상반기 정기총회에서 제가 아시아·오세아니아 대륙 대표로 선임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지만 유럽이나 북미 대륙에 비하면 산악영화제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 한국의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중심이 되어 산악영화 발전과 대중화에 더욱 힘을 쏟으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인천출신으로 올해 3회째를 맞은 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의 프로그래머인 최선희씨는 울주산악영화제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에서 인정받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와 인연은 2014년 경남 울주군에서 영화제 준비단을 출범할 때 영화제 로고, 홈페이지 제작 등 기반작업부터 참여해서 2015년 프레페스티벌의 예산과 사업 기획을 맡으면서 시작했어요. 올해 3회를 맞은 울주산악영화제가 두 번째 개최만에 지난해 하반기 국제산악영화협회에서 정회원으로 승인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운영을 바탕으로 비교적 빠르게 성장한 점을 지켜봤던 국제적인 산악영화제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셈이죠."

지난 9월7일부터 11일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지역의 지형적인 특색을 살리고 10년동안 차근차근 준비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영화제로 자리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10년 전 울주군과 울산시가 '영남알프스'라는 아름다운 산을 문화 콘텐츠를 통해 알리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한게 '울주 오디세이'에요. 신불산 간월재 억새평원에서 산상음악회를 개최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뜨거웠어요. 울주 오디세이의 성공에서 자신감을 얻은 국내 산악인들이 전문 산악영화제를 울주군에 제안하고 캐나다 밴프산악영화제 참관 한 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밴프산악영화제 월드투어 상영회를 가졌지요. 산악영화제의 가능성을 확인한 울주군이 2015년 프레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거쳐 2016년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지요."

프레페스티벌 때부터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맡아온 최선희씨는 프로그래머가 생소하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영화제의 주제를 정하거나 주제에 맞는 영화를 선정하고 감독이나 배우 등 영화 관계자를 초청하는 등 영화제 전반을 기획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제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프로그래머의 역할은 영화제의 정체성과 방향을 잡고 성격을 설정하고 상영작과 초청인사 섭외, 각종 행사를 기획하죠. 프로그래머가 되려면 우선 적합한 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영화에 대한 지식은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해외 영화제에 참석해서 영화 관람과 함께 외국인 관계자와 네트워킹을 위한 외국어 소통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다면 더욱 좋지요."

그는 울주산악영화제를 마친 뒤 지난 9월20일부터 23일까지 열린 폴란드의 라덱산악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참관하고 28일 돌아왔다.

"올해 23회째를 맞는 대표적인 국제산악영화제라고 할 수 있어요. 4일간의 짧은기간이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악인들을 초청한 2000석의 강연장 및 1000석의 영화 상영관이 매일 매진될 만큼 행사장은 관객들로 넘쳐났지요. 올해는 특히 '산악영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황금피켈상 시상식도 함께 열려 행사에 활기를 더했어요. 폴란드에서는 산악인과 클라이밍 선수들의 인기가 대단해 국민 영웅으로 대접받는 사실이 놀라웠고 부럽기도 했어요."

최씨는 울주산악영화제는 국내 첫 산악영화제이지만 유렵이나 북미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영화제가 많이 열리고 있다며 대표적인 영화제를 소개했다.

"가장 오래된 산악영화제로 올해 66회를 맞은 이탈리아의 트렌토영화제와 43회를 맞는 캐나다의 밴프산악영화제 등 전 세계에 30여개의 산악영화제가 있는데 대부분의 유서깊은 영화제는 알프스산맥을 중심으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열리고 있지요. 아시아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네팔의 카트만두국제산악영화제가 올 12월에 16번째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지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최씨는 지역의 특색를 살려 개최하고 있는 영화제라는 공통점 때문에 인천서 열리는 디아스포라영화제도 해마다 참관하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고향인 인천에서 열리는 영화제라 초기부터 관심있게 지켜봤어요. 개인적인 인연 때문은 아니지만 디아스포라영화제를 주최하는 인천영상위원회 위원장인 임순례 감독은 지난해 울주산악영화제 국제경쟁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셨고 올해는 임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상영하기도 했지요. 또 '암벽여제'로 불리는 인천산악연맹 소속의 스포츠클라이밍의 김자인 선수는 2016년 1회 영화제때 홍보대사로 활동했어요."

최씨는 배창호 감독이 올해부터 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울주산악영화제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며 기대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나타냈다.

"배 감독님이 워낙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지금도 기억하는 작품들이 많아요. 그런데 배 감독님이 젊은 시절 인천에서 살 때 계양산을 자주 올랐다는 말을 듣고 너무 반가웠지요."

최씨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서 '주말의 명화'를 하면 빨리 자라는 부모님의 성화를 뒤로하고 끝까지 영화를 보곤 했고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재개봉관을 다니며 영화에 빠져 살았다.

대학 때부터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강한 반대로 꿈을 접었지만 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한 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산과의 인연은 대학교 때 인화여고 동문 선배들을 따라 지리산, 월악산 등 힘든 산을 겁 없이 올라 고생을 한 뒤 산을 멀리했어요. 하지만 산악영화제 일을 시작하면서 고산 등반과 암벽 등반을 다룬 영화를 1년에 수백편씩 보게 되면서 등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지요. 도대체 등반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끊임없이 산과 암벽을 오르는지 알고 싶어 클라이밍을 시작했어요. 높이 오르면 여전히 겁이 나지만 그래도 이제는 등반가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지요."

최씨는 울주산악영화제가 초기부터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평가에 따른 자부심과 함께 제기되는 '산'이라는 소재의 제한성과 지방도시에서 개최한다는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산악영화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스포츠 클라이밍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나 고산등반 외에도 클라이밍, 산악자전거,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산악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산악영화제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대중성의 확보나 규모의 확장과 함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울주·울산지역의 산악인은 물론 고산등반을 하는 전문산악인과 영화제인만큼 전문 영화인들과의 교감을 통해 폭넓은 참여를 유도해서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전문성을 살려나가야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최선희 프로그래머는…

- 1970년 인천 출생·인화여자고등학교 졸업·고려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영화이론 석사과정 수료·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조교
-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팀·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영화진흥위원회 (사)배리어프리 영화위원회 근무
- 現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프로그래머

국제산악영화협회는?

국제산악영화협회(IAMF?International Alliance for Mountain Films)는 2000년 2월 이탈리아의 트렌토영화제, 캐나다의 밴프산악영화제, 프랑스의 오트랑산악영화제 등 8개의 세계산악영화제와 이탈리아 토리노국립산악박물관이 모여 창립한 국제단체이다.

산과 자연, 인간이라는 주제를 가진 산악영화의 보존과 보급을 위한 목적으로 매년 2회의 정기총회를 통해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해마다 산악영화 활성화에 공헌이 큰 인물 및 단체를 선정해 IAMF 그랑프리상을 수여한다.

현재 IAMF의 멤버는 총 24개로 유럽, 아시아·오세아니아, 북·남미의 23개의 산악영화제와 토리노국립산악박물관이 소속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