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권리도 소중히" … 30여년 서민·약자 변론

 

수원서 첫 출발 … 노동·공안 관련분야에 큰 획
다산인권센터·참여연대·국가인권위 등 활동
최근 광교로 사무실 이전 … '새로운 30년' 준비

사람이 개인이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인 '인권(人權)'.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장애인이건 아니건, 여자건 남자건, 외국인이건 우리나라 사람이건,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외모나 성별, 국적 등을 이유로 인권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촛불시민대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이처럼 중요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경기지역에서 변호사로서, 때로는 시민운동가로서 30년 가까이 노동과 공안 등 인권 분야에 큰 획을 그으며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60) 대표변호사다. "사회적 약자, 소외된 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잃지 않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내 자신을 돌아본다"는 김 변호사를 지난 24일 서초동의 다산 서울사무소에서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목표 등에 대해 들어봤다.

▲법정에선 '거리의 변호사'로, 사회에선 발로 뛰는 '변호사운동가'로
1958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김 변호사는 군산중학교 졸업 후 집안사정 등을 고려해 대입검정고시에 응시, 4개월 만에 합격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또래 친구들이 고교 1학년생이고, 바로 대학에 입학할 생각도 없어 친형이 일하는 서울 청계천 옷공장에서 일을 도와주게 됐다. 공장에서 숙식하며 당시 노동자들의 삶은 알게 된 그는 성균관대 법대에 입학,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고 서민들을 돕는 '가난한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1987년 사법고시 낙방을 감안해 행정고시와 법원사무관 시험을 봤는데, 운이 좋게 모두 합격한 그는 결심대로 변호사를 택했고, 연수원 노동법학회장으로 활동하며 노동문제에 관한 이론과 실무를 익혔다.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노동·공안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수원에서 노동인권변호사로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문턱을 낮추고 경제력이 없거나 무지함으로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모든 종류의 사건들을 처리했다. 그는 법정변론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사람이 모이면 어디든 간다'라는 생각으로 많은 현장을 방문해 상담과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얻어진 사람들의 신뢰가 지금의 법무법인 다산의 토대가 됐다.
그는 '시민들과 가까운 존재, 성실하게 일하는 존재, 사회적 약자나 구조적인 불합리로 피해받는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존재, 수원이라는 지역사회에 터잡고 활동하는 존재 등을 나타낼 수 있는 이름이 뭘까' 직원과 지인들에게 물었고, 정약용 선생의 호인 다산이 만장일치로 정해졌다.
"다산은 세계 최초의 계획된 신도시인 수원화성의 설계자이자, 백성의 마음을 읽는 목민관의 지침서인 목민심서의 저자이고 개혁의 사상가입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했죠."
그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한 쪽에 다산인권센터의 시초인 '다산인권상담소'를 개소해 경기남부지역의 각종 노동운동의 지원과 상담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1990년경부터 3건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맡아서 처리했다. 당시 화성경찰서에서 미국에 살던 한 사람이 꿈에 범인을 봤다며 김종경씨를 지목했고 '근거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지만, 이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제보를 받고 김씨를 연행해 7주간 인권침해 수사를 했는데, 그가 변론을 맡아 손해배상을 청구해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김씨는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받은 충격으로 자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 변호사는 매스컴과 법조계 등에 알려지게 됐다.
그 후 할머니 가정폭력사건을 통해 여성인권문제를 사회여론화했고, 경기도여자기술학원 화재사건을 맡으면서 청소년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또 김포 농수로 사건, 신갈파출소 민병일 의문사 사건, 의문의 식물인간이 된 소년원생 사건 등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사건들도 계속해 맡았다.
8년마다 안식년을 주는 다산의 방침에 따라 김 변호사는 1998년 서울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시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를 발족했고, 아파트 공동체운동을 지향하며 '아파트공동체연구소'를 만들었다. 또 사회복지대학, 노인주간공동사업단 사업 등을 통해 '모든 문제의 해결은 복지'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유산 1% 남기기 운동'을 참여연대에 제안해 본격적인 시민운동으로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했다.
특히 IMF 구제 금융 사태 이후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고, 수원지방변호사회 이사로 재직하면서 중소기업법률구조단을 구성해 운영했다. 이를 계기로 법무법인 다산에서는 중소기업법률센터를 만들고 기업을 대상으로 법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굵직한 기업관련 사건도 맡았는데, 아시아자동차와 교보생명간의 종업원퇴직보험의 해지효력을 놓고 522억원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또 2007~2009년 3년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와 사회의 인권증진을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경찰청 인권위원장으로 호선돼 경찰 정책에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지 평가하는 인권영향평가 자문, 국가인권위의 권고 수용 타당성 검토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30명의 다산 직원들과 새로운 30년 준비
수원지방법원 사거리 인근에 자리잡았던 법무법인 다산 수원사무소가 지난 26일 광교로 이전했다.
수원지법 앞에서 1990년부터 시작해 30년 가까이 됐는데, 2019년 수원고등법원·검찰청 시대를 맞아 '새로운 30년을 준비하자'는 의미로 옮기게 됐다.
김 변호사는 "수원에서 중형 로펌으로서 집단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변호사들이 모여 변호사를 만나기 어려운 서민들, 약자들을 위해 변론하겠다고 출발했고 IMF 사태 이후 중소기업으로 영향을 확대했다"며 "'기업과 시민의 작은 권리도 소중히 여기는 로펌'이라는 기본 정신을 가지고 이젠 훨씬 더 전문화되고 고도의 서비스를 갖춘 새로운 다산으로 30년을 준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다산에는 변호사 10명을 포함, 총 3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그 시기마다 핫 이슈들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넓은 의미에서 인권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에는 주로 고문과 폭력, 가혹행위 등을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됐다면 이후엔 정신적·언어적 폭력, 장애인 차별, 성소수자의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 등이 대두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최근 젠더가 이슈라고 하는데, 이 또한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만 국한될 게 아니라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남북교류가 활발해 지고 있는 현재,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짚었다.
"인권에 대한 보편성의 원칙에 의해 북한의 인권문제는 예전부터 계속 제기돼 왔는데, 앞으로 교류 협력이 강화되면 북한 인권의 실상이 객관적으로 외부에 알려질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 개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폐쇄성이 사라지고 외부와 소통하는 사회로 바뀌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인권은 크게 개선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는 마지막으로 수원 고법·고검시대를 앞두고 경기도, 특히 수원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가 변호사를 시작했을 당시 '변호사 스스로 몸을 낮추고, 문턱을 낮춰서 일반인들을 위한 법률서비스를 진행하자'라는 도덕적·정신적 각성을 촉구했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이미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즉, 변호사가 많이 양산되고 변호사간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보다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할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 스스로 업무를 효율화해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또 여전히 많은 변호사들이 민·형사 소송을 중심으로 매달리고 있는데, 법률의 보호에서 소외돼 있는 새로운 영역들을 발굴해 선제적으로 법률시장의 문을 두드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경기남부지역이 인구도 많고, 변호사 수도 많음에도 법조문화나 여러가지 사회적 이슈를 다룸에 있어 주변이었다면 이제는 수원고등법원 개원과 더불어 법조사회에서도 질적·양적으로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류, 법률적인 이슈들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며 "수원고법 인근의 모든 변호사들이 실력은 물론 성과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장선 기자 kjs@incheonilbo.com